부활 4주간 금요일
‘참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을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가 내게 말을 건넸을 때, 그 의미를 바로 알아듣고 그걸 했더라면 오해나 고생하지 않았을텐데, 그 당시는 못 알아들었던 것을, 나중에 누군가 죽고 나서야 그제서야 알아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족, 친지, 친구, 선후배 사이에서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非一非再)한데요.
복음 상황도 비슷합니다. 아직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입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는 믿어라” 하시지만 여전히 제자들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독서에도 “예루살렘 주민들과 그들의 제자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단죄하여 그분을 죽이자고 빌라도에게 요구하였습니다.” 라고 나옵니다. 눈이 가리워지고, 진가를 몰라보며, 헤아림이 부족한 사태는 꼭 성경에서만 나오진 않습니다. 이미 주변에서 벌어집니다. 하지만 이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데요. 오히려 나를 일깨우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몰라야 알게 되고요. 배고파야 음식이 맛있듯이, 허기지고 생각이 짧은 우리가 나중에 그 맛의 진가를 알게 되고, 또는 해악을 알면서 성장하는 계기가 되곤 합니다. 그렇기에 우린 ‘지금 당장’ 에 모든 것을 걸면 안됩니다. ‘한 번 생각하고 마음 먹는 일’ 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글쓰는 사람들은 한번 쓰고 나서 바로 끝맺지 않습니다. ‘퇴고(推敲)’ 라는 여러 번 고쳐쓰는 작업을 합니다. 그러면서 글을 정제해 나갑니다. 첫 느낌은 강렬할 수 있으나 꼭 이성적이지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몰라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중함, 진중함, 지혜로움을 통해서 참 진리를 발견해 나가야 합니다. 그런 과정을 겪을 때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됩니다. 뭔가를 발견하는 과정은 꼭 얼른, 빨리 다가오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과정의 시간이 더딜 수 있고,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니 평소 열려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참된 것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