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6주간 목요일

2024. 5. 9. 오후 3: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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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6주간 목요일

 사람을 움직이는 요소 중 하나는 관심입니다. 관심은 내가 활동하는 시간동안 그것에 집중하게 만들고요. 그것만 하게 합니다. 물론 긍정적인 요소로는 내가 하려는 것을 더 할 수 있게 만들지만 반대로 위험할 수도 있는데요. 요사이 인터넷을 하면 알고리즘이란 것이 있습니다. 용어상 알고리즘은 컴퓨터가 따라 할 수 있도록 해결하는 절차나 방법을 설명하는 과정이지만 인터넷에서 말하는 알고리즘은 검색했던 사이트나 물건을 토대로 내가 또 필요할 것 같다고 여겨지는 것을 추천해줍니다. 문제는 이것이 편하고 신기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가 관심있는 것들이 그리 다양하지 않은, ‘우물 안 개구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컴퓨터가 내가 평소 관심있던 분야의 주제 영상과 글자를 분석해 놓고 있으면서, 여기에 계속 비슷한 것을 제시하면서 자기만의 생각 속에 가두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신기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조종당하고 있다는 점을 볼 필요가 있는데요. 나를 거기에 가두는 것이지요. 우리의 신앙도 그럴 수 있습니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에 하느님을 가둬놓고 믿으려는 현상입니다. 왜냐하면 어색하면 당장에 불안하고 당황되니까요.

 믿음이란 각자의 자유의사가 반영된 것이기에 나름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면 이런 것도 보입니다. ‘내가 지금 보고 들은 것을 바로 이해해야 된다고 여기는 착각입니다. 음식의 입맛도 어릴 때나 좋아하는 초딩 입맛이 있고요. 좀 어른이 되야 아는 맛도 있는데, 하물며 하느님이란 큰 분에 대해서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전부라고 여길 수 있을까요? 사실 신앙을 가지려면 많은 반대에 부딪힙니다. 바오로도 독서에 그들이 반대하며 모독하는 말을 퍼붓자, 바오로는 옷에 먼지를 털고 나서 여러분의 멸망은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나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라며 떠납니다. 복음의 제자들도 예수님에 말씀에 그것이 무슨 뜻일까?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지 알 수가 없군 합니다. 당장에 어렵고 어렵다는 것은 안 좋은 게 아니라, 신비의 차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린 하느님의 불가지론(不可知論). 사물의 본질을 다 인식할 수 없다는 이론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범주를 뛰어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잘 헤아리는 시간, 기도의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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