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6주간 월요일.

2024. 5. 7. 오전 12:06:08

글자

부활 6주간 월요일.

 정희성 시인의 희망공부란 시가 있습니다.

절망의 반대가 희망은 아니다 / 어두운 밤하늘에 별이 빛나듯

/ 희망은 절망 속에 싹트는 거지 / 만약에 우리가 희망함이 적다면

/ 그 누가 이 세상을 비추어줄까

이 시에서 희망함이 적다는 표현은 시인이 전태일 열사의 일기장에서 본 것이랍니다.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약점은 희망함이 적다는 것'이라고요. 전태일 열사는가 평화시장의 재단사로 있을 무렵, 작은 공장에서 각혈을 하며 쓰러진 여공을 보며 그는 눈이 뜨입니다. 그러면서 오늘날의 노동운동을 하게 된 계기를 열어준 이였습니다. 지금도 노동운동은 어렵지만 그때에도 모두 하지 말라고 말렸고요. 계란에 바위치기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의 희생이 불가능하게만 여긴 오늘날의 노동자들에게 큰 가르침이 되었는데요.

 마찬가지로 신앙인들도 사회인들이 보기에 불가능한 것을 하곤 합니다. 그래서 힘들게 보이기에 잘 안하려 들곤 합니다. 물론 교리에는 희생을 통한 구원을 말해주고 있었지만 말이지요. 왜 그럴까요? ‘현실에 붙어사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말로는 성령의 움직임과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지닌 약점과 용기 없음이 어떤 것도 시도하지 못하는 현실을 보는데요.

 요사이 사람들은 모험을 하려 들지 않습니다. 예상되는 것에서 멈춥니다. 머리속으로 생각은 많습니다. 그 이유는 일단 안전하고요. 괜한 실패의 비판에 대한 오명을 쓰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그렇게만 활동하시나요? 우린 다시금 살펴야 하겠습니다. 당신께서 나를 통해 어떻게 활동하시는지 나를 열면서 그분께서 나를 채워주시길, 그러면서 연약한 우릴 움직여주시길 빌어야 하겠습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