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7주간 수요일
제가 아는 지인 중에서 사업하는 분이 있습니다. 한 분은 요식업에서 뷔페업을 하고요. 또 다른 분은 무역업을 합니다. 그런데 둘 다 나이가 지긋이 들어 사업을 자녀에게 물려주면서 일을 조금 떼어서 맡아 보라고 시켰답니다. 하지만 자녀가 보여주는 일의 처신이 대단히 못마땅하더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업을 하다보면 같이 거래하는 거래처 개인적 사정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거래 해왔던 곳이라 그런 여러 사정도 이해해줘야 하고, 그들이 있어야 본인도 먹고 사는데, 그걸 이해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손해 안 보려고 거래처와 갈등을 빚으면서 일을 하더라’ 는 것이지요. 그 얘길 들으며 순간 ‘이것이 창업주와 재벌 2세의 차이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세는 무작정 손해를 피하고 안보면서 자기 회사를 지키려 들겠지만, 창업주는 본인이 밑바닥부터 일궈가면서 그 과정을 다 경험했기에 생길 수 있는 손해도 감수하며 다음을 기약하는데요.
오늘 예수님은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 진리로 거룩하게 해주십시오” 라며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의도를 아십니다. 그래서 희생의 사랑도 감수하셨고요. 아브라함 이전부터 계신 분이기에 창조 때부터 보아온 여러 과정을 다 아십니다. 누구 하나 소홀이 할 수 없지요. 하느님은 살아있는 이들의 하느님, 죽은 이들의 하느님입니다. 하느님 안에서는 다 살아있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은 서로를 비방하고 싸우기도 하겠지만 부모 마음은 다르지요. 다 소중하니까 잘 지내길 원합니다. 여기에 주님은 부모님의 마음처럼 “하나” 가 되길 기도합니다. 바오로도 “여러분 자신과 양 떼를 잘 보살피십시오.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피로 얻으신 교회를 돌보게 하셨습니다.” 희생을 해본 사람은 사랑으로 일을 하려 듭니다. 그 어려움을 알기 때문입니다. 허나 그런 것 없이 무조건 ‘부여 받은 이’ 들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그저 자기 생각대로 하려 들지요. 우리도 그렇습니다. 배운 사랑은 있지만 그 사랑이 힘을 얻으려면, 여러 과정에서 체험을 통해 현실을 이해합니다. 그저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다들 다릅니까?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우린 계속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