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대축일

2024. 5. 18. 오전 10: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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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대축일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미술 중에 한국화가 있습니다. 먹물과 붓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색깔을 넣을 수도 있지요. 여기에 수묵화라는 것이 있습니다. 오로지 먹물과 물로써 그립니다. 그러면 수묵화에 색깔이 몇 개나 들어 있을까요? 답은 그냥 까만색이 아닙니다. 물빛과 검은 빛 사이에 수많은 회색이 존재합니다. 물의 농담을 조절하여 말로 다 설명하지 못하는 색깔을 조절하는데요. 허나 모르는 사람은 이렇게만 말하겠지요. ‘그냥 까맣다라고요. 이렇듯 단순한 그림 같지만 실은 수많은 다양함이 있고요. 화가는 그걸 뽑아냅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단순하다고만 표현할 수 없는데요. 이른바 잘 모르는 사람이 용감하다는 말처럼, 반대로 뭔가 아는 사람들은 조심스럽습니다. 과연 이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면서 말이죠. 여기에 성령강림 대축일을 맞이하여 저도 주님의 활동에 대해 세분하여 설명을 해볼까 합니다.

우리가 그동안 성령에 대해 설명한답시고, 너무 간단하게만 설명했습니다. , 바람, 비둘 기, 혀의 모양이라고요. 그러다 보니 그분의 실체에 대해 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교회와 세상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령의 현존과 활동에 관한 성찰과 식별이 필요합니다. 이를 잘못 이해하면 그분의 의도와 달리 가볍게 여기거나 곡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18년 발표한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에서 식별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식별의 지혜가 없다면, 우리는 모든 지나가는 유행에 좌우되는 꼭두각시가 되기 쉽습니다. 식별은 우리 삶에 새로운 일이 생길 때 더욱더 중요합니다.” 그럼 어떻게 분별해 나가야 할까요?

 먼저 성령에 대해 분석해 보겠습니다. 뭔가 하는 사람들은 곡식에 체를 치듯, 알갱이와 종류를 세분할 줄 알아야 제대로 알아듣는데요. 첫째로, 성령은 보호자요, 협조자입니다. 현존하시는 영의 활동에서 우린 도움을 받습니다. 미취학 아동에게는 후견인이 필요합니다. 여러모로 미숙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보호해 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보호자가 필요합니다. 병원을 입원하더라도 보호자가 있어야 합니다. 홀로 해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자비를 베푸소서 라는 기도는 참 필요한 기도입니다. 스스로 부족한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래서 복음 전에 우린 부속가를 통해 오소서 성령님을 기도하며 그분을 부른 것이지요. 아프거나 허약하거나 은퇴하거나 자신의 처지를 보며 허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럴 때 그분을 불러야 합니다. 둘째로 인도자이십니다. 힘이 있지만 방향을 모를 때가 있습니다. 잘못된 길을 가곤 합니다. 그걸 돌이키려면 많은 희생과 대가가 따르지요. 이런 때 무슨 기도가 필요할까요? 시편 119편에 나오지요. 주님은 제 발의 등불이옵니다.” 요새 우리 사이에 내 생각에 갇힌 답정너가 너무 많습니다. 헛똑똑이들이지요. 나를 믿다보니 판단도 흐려집니다. 우린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압니다. 왜 하느님이 동생 아벨의 제물은 받으시고, 형 카인의 제물은 받지 않았을까요? 성경에 나옵니다. 아벨은 짐승이 첫 새끼를 낳는 맏배를 하느님께 드렸지만, 카인은 자기 수확물 중 하나를 드립니다. 여기에 하느님이 꾸중하시자 동생에게 질투와 앙심을 품습니다. 그걸 아시고 하느님은 말씀합니다. 네가 옳게 행동하지 않으면, 죄악이 문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리게 될 터인데, 너는 그 죄악을 다스려야 하지 않겠느냐?” 좀 환기하면서 생각을 헤아려 보라 하셨으나, 자기 생각에만 사로잡힌 카인은 동생을 죽이지요. 이런 기분이 들면 기분에 좌우되면 안됩니다. 그러면 분명 후회를 합니다. 조심해야지요. 그래서 그분을 불러야 합니다. 셋째로 그분은 중개자이십니다. 어찌할지 모를 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도 살면서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잖습니까? 마지막으로 그분은 우리의 변호자요, 위로자이십니다.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모두가 진심을 알아주진 않습니다. 잘 품으며 개인적으로 삭히며 가야할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기도를 통해 그분의 도우심으로 다스려 나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인헌동 교우 여러분

교황님은 말씀합니다. “식별은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거나 결정을 내릴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식별은 우리가 주님을 더욱 충실히 따르도록 도와주는 영적 투쟁의 도구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때와 그분의 은총을 깨달을 수 있으려면, 식별이 필요합니다.” 세상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우린 주님의 은총을 헤아려야 합니다. 이제 봉헌 때 내가 성령카드를 뽑지만, 실은 당신이 허락하시는 은사를 받아들면서 이 세상에서 주님의 힘을 잘 느끼며 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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