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자신도 모르는 것을 말하는 사람들’ 이 있습니다. 이들은 어떤 사람일까요? 이상한 사람일까요? 삼위가 하나인 날이랍니다. 그런데 설명하기 불가능하답니다. 보통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람이 자기가 아는 것만 말해야지’ 라고요. 헌데 가끔 이런 것을 만납니다. 자기를 넘어선 영역을 만났을 때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요? 신앙인이나 무신론자나 상관없이요. 과학자들 중에도 모르는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전통적인 과학은 이랬습니다. 어떤 가설을 던져놓고, 여기에 증명할 수 있는 계산과 증거를 찾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던진 가설이 증명되면서 진리를 찾는 학문입니다. 예전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했지만 책으로 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과학적 증거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갈릴레이도 지구가 돈다고 했지만 여전히 증거는 없었고요. 주장만 할 뿐이읬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가 맞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그동안 시간이 많이 필요했고, 기술이 발달했기에 가능했습니다. 양자역학, 양자물리학이란 학문이 있습니다. 뉴턴의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매우 작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는데요. 수학으로 풀 수는 있지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192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아인슈타인도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고 말합니다. 정육면체 주사위에는 6개의 점이 찍혀있지요. 한 번 던질 때 1/6의 확률이 주어집니다. 그가 이런 말을 한 이유는, 기존 과학은 현재의 상태를 알면 미래의 상황을 예측할 수 있다고 여겼지만, 이제는 그게 아니라 단지 미래를 어느 정도의 확률로 추측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걸 그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겁니다. 트랜드가 달라진 겁니다. 그러면서 그는 내리막길을 걷습니다. 여기에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리처드 파인만도 ‘나는 어느 누구도 양자 역학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고 말합니다. 뉴턴이 발견한 두 개의 물질, 우리가 아는 사과와 땅이 끄는 중력, 이 2개 사이의 계산은 가능하지만 그 이상 넘는 삼체 – 넷플릭스 드라마로도 나왔지요. - 3개 이상의 물질의 중력과 질량 계산은 아직도 풀리지 않습니다. 여기에 과학은 패러다임, 인식의 전환을 맞습니다. 이제 중요한 문제를 건드리지 않습니다. 풀 수 있는 문제만 건드립니다. 왜요? 아직 못하니까요. 수나 양으로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것만 문제 삼습니다. 관측이 가능해야 설명할 수 있으니까요. 그 외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은 아예 무시해 버립니다. 이것은 초자연적인 모든 것을 배제하고, 오직 측정 가능한 것만 다루겠다는 발상입니다. 이것을 방법론적 무신론이라 말합니다. 계산할 수 없는 건 아예 다루지 않으니까요. 여기에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도발을 일으킨 사람이 있는데요. 사람들에게 유명한 리처드 도킨슨입니다. 그의 책 ‘이기적 유전자’에서 ‘우리는 DNA라 불리는 분자를 후세에 전하기 위한 생존기계일 뿐이다’ 라는 엄청난 말을 합니다. 사람을 번식 기계처럼 여기는 이유를 그는 ‘이기적 유전자’ 로 말하며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이유는, 자신의 유전자가 늙었기 때문에, 더 젊고 건강한 개체를 전하려면 지금 늙은 자신을 스스로 도태시키고, 자신과 닮은 유전자에게 넘겨준다는 주장은 사람이 가진 선함과 배려, 희생 등의 고결함을 뭉개버리는 메카니즘의 작동,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주장에서 무엇이 느껴지시는지요? 이는 모든 걸 과학이 설명할 수 있다는 과학 만능주의가 갖는 폐단입니다.
오늘 자신도 모르는 것에 대한 주장을 펴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철학에서 중요한 논리실증주의자인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과학이나 철학이 실용적이고 체계적인 기초를 다졌지만 한편,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영역을 너무 좁혀버린 문제점도 발생합니다. 왜냐하면 말로만 할 수 있는 것의 한계가 너무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없다고 해야 할까요?
오늘 삼위일체대축일입니다. 삼위일체를 헤아리기 어렵다고 말하지요? 1998년 탄소나노튜브 연구로 주목받으며 이제는 세계적 석학이 된 우리나라의 임지순 교수가 말합니다. ‘탄소나노튜브가 평면이었던 것이 튜브로 바뀌면서 마치 전혀 다른 물질인 것처럼 놀라운 변화를 일으킵니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예전부터 있었던 탄소이지만 요즘에야 발견한 것이지요. 저는 연구할수록 신의 존재를 느낍니다’ 라고요. 그러면서 예전 들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일화가 떠오릅니다. 그가 삼위일체 신비를 고민하며 해변을 거닐 때, 한 어린아이가 모래사장에 작은 구덩이를 파고 그곳에 조개로 바닷물을 퍼 담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그 안에 바닷물을 모두 담기 위해서라고 답합니다. 여기에 그가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 줄 아느냐?’ 고 따지니 아이는 말합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를 머리로만 이해하려는 것이 얼마나 더 어리석은 일이냐?’ 고 반문하며 천사로 변해 올라갔다는 일화지요. 우리가 아는 것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모르는 것을 떠벌려도 안됩니다. 그러니 겸손하게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그분을 음미하고 헤아리면서 말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