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0주일

2023. 10. 28. 오전 7:5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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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30주일. 탈출 22,20-26; 1테살 1,5-10; 마태 22,34-40

 무언가 자각하려면 지금 나의 상태를 제대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을 관찰이라고 말하지요. 그래서 여쭙습니다. 여러분은 나에게 주어진 상황이 잘 보이십니까? 이런 표현을 써보겠습니다. 알지만 하지 않는다. 보고 있지만 돕지 않는다. 곁에 있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어떻습니까? 현실에서 자주 벌어지는 현장입니다. 무관심은 이 시대의 질병 같은 질환입니다. 뻔히 일이 옆에서 벌어지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또는 뭐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루카 복음에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이에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드시지요. 그 얘기를 다 듣다가 예수님은 재차 물어봅니다. 이 중에서 이웃이 되어준 사람은 누구이냐?” 그러자 율법학자는 답합니다.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마치십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주님의 비유를 들으시며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우리가 뭘 안다고 해서 꼭 실천하지는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온 가장 큰 계명을 우리가 모르겠습니까? 주변 국가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참상을 보면서도, 피해를 보고 있는 이웃들의 아픔을 알면서도, 가만히 있을 때가 있습니다. 정작 나에게도 도움이 필요할 때, 결국 아무 도움을 못 받아 겪게 되는 허전함과 상실감이 있지요. 벌써 이태원 참사가 지난 지 1년이 되었습니다. 이 참사를 다룬 으깨어 부서지다는 뜻의 크러쉬(Crush)라는 2부작 다큐멘타리를 미국이 제작했지만 정작 사고가 발생한 우리나라에서 시청할 수 없는 이유는 국내 배급사가 정부 눈치를 보기에, 이 작품을 수입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현실에서 평소 우리가 이웃을 대하는 자세를 보여주는데요. 결국 진짜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누구인가?를 묻게 됩니다. ‘당장 힘이 있어 보이는 사람의 눈이냐? 아니면 하느님의 눈이냐?’

 복음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바로 그분을 두려워하여라.” 두려움을 넘는 사랑은 주님에게서 배울 때에서야 없었던 사랑이 나옵니다. 잘 배워서 실현시켜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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