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5주일. 이사 55, 6-9; 필리 1,20-27; 마태 20,1-16
오늘 복음은 밭임자가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을 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주인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꾼들을 왜 찾아다녔을까요? 너무 당연한 말 같지만 뭔가 하고 싶다면,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말이지요. 그래야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과 하느님이 하시려는 하느님 나라의 차이를 알게 됩니다. 이런 질문을 드려보지요. ‘우리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채택한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자본주의의 한계를 느끼고 계십니까?’
먼저 자본주의의 경제학적 의미는 이렇지요.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경제체제로, 자본을 가진 자본가가 노동력 밖에 없는 노동자들에게 상품을 만들게 하는 경제체제입니다. 자본주의의 두드러진 특징은 세 가지입니다. 1.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을 중심으로 경제가 운영된다. 2. 기업이나 개인의 이윤 증대가 경제의 최고 목적이다. 3. 개인의 사유재산을 인정한다. 초기에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는 경제를 이루었지만, 자본가가 독식하는 방식이 이뤄지자 국가가 개입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수정자본주의, 신자유주의 등이 나오지만 여전히 문제점이 생깁니다. 얼마 전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나열한 필립 코틀러는 말합니다. 빈곤 해결책이 없다, 소득 불평등이 심해진다, 자동화로 일자리가 없어진다. 환경과 천연자원이 남용된다. 경기순환이 불안정을 초래한다. 개인주의와 사리사욕을 강조한다. 개인 채무 증가를 조장한다. 정치인, 기업이 시민의 이익을 저해한다. 국민총생산(GDP) 성장에만 집중한다, 사회적 가치와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다. 등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알고 계신 문제점입니다. 서로가 잘 살려고 했던 정책에 문제가 생겼을 때 어찌해야 할까요? 자본주의의 위기를 거론하면 진보주의자라고 판단했던 시대도 있었습니다만, 이젠 아닙니다. 보수주의자마저 자본주의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 귀를 기울입니다. 이 위험은 너무나 일상적이고 당연해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결국에는 모두에게 전염이 되고 있는데요. 이 사태를 방관해야 할까요? 모두의 위기인데요. 물론 저는 경제학자는 아니기에 위험 속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살펴봅니다.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포도밭 임자는 아침부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을 구하면서 합의합니다. 하루, 한 데나리온이 일당이라고요. 그런데 밭 임자가 좀 이상합니다. 일꾼을 계속 구합니다. 9시, 12시, 오후 3시, 오후 5시까지요. 그러면서 일당은 똑같이 줍니다. 게다가 큰소리까지 칩니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내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데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시기하는 것이오?” 순간 불공평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알아들어야 할까요? 이 비유는 하느님 나라의 성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언제라도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고요. 밭 주인 입장에서는 언제라도 자신의 넓은 땅에서 일하도록 제공합니다. 그러기에 허락된 선에서 합의한 것을 따른다면 소외된 사람이 없게 되며, “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된다” 뜻은 나중에 갈 하느님 나라는 서열이 뒤바뀔 수 있기에 영원한 자본가도 없고, 영원한 노동자도 없으므로 모두를 존중해야 함을 말합니다. 여기에 1891년 교황 레오13세가 내놓은 회칙 ‘새로운 사태’ 이후, 백년 후에 내놓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때 ‘백주년’에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인간이 자신의 이마에서 흐르는 땀의 댓가로 빵을 얻을 의무는 당연하다. 이러한 권리가 체계적으로 부정되며, 경제 정책의 결정이 노동자들로 하여금 합당한 조건들을 달성하도록 해주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는 윤리에 합당하다고 인정될 수 없으며 사회적 평화를 달성할 수 없다’ 어떤 세상을 만나고 싶습니까?
사랑하는 인헌동 본당 교우 여러분
우리는 일을 하고 땀을 흘려야 먹고 삽니다. 이는 정직한 노동입니다. 그리고 이런 노동을 가치있고 신성시 여깁니다. 그렇다면 현재 살아있는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씀에서 그 방향을 제시하십니다. 1독서에는 “불의한 사람은 제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오너라” 하시며 주님의 생각을 읽게끔 하고요. 2독서에는 “살든지 죽든지, 나의 이 몸으로 아주 담대히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라며 나의 육신으로 거룩한 선택을 하게 인도하십니다. 그렇게 해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