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콜로 3,1-11; 루카 6,20-26
예전 아씨시의 프란치스코회를 방문했을 때입니다. 거기엔 프란치스코 성인이 입었다는 수도복이 박물관 통창처럼 펼쳐져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여러 군데 기워 입은 흔적이 많았는데요. 왜 그것이 사람들에게 감동으로 다가올까요? 다 낡아빠진 것인데 말이죠. 그 옷을 통해 우린 그분의 정신 세계를 보게 됩니다. 무슨 꿈을 꾸고 살았는지 말이지요.
독서는 말합니다. “여러분은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옛 인간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버리고, 새 인간을 입으십시오.” 복음은 행복과 불행을 거론하며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며 인간적인 행복이 불행이요, 하늘의 행복은 그런데 있지 않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기념일을 맞이한 성 요한은 어머니 덕분으로 당시 최고의 교육을 받습니다. 5살 때부터 가정교사를 통해 읽기, 쓰기, 산술을 읽히고요. 스토아 철학을 접하며 13살 무렵부터 논리학, 수사학을 접하며 정치가, 변호사가 되는 이들이 받는 교육을 받습니다. 요사이 정치가들이 여러 논리를 펴는 것은 이미 그리스 시대 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하나 논박을 해가며 강론을 합니다. 393년 경, ‘허영과 자녀교육’ 이란 글에서 부모는 자녀들에게 세속적인 부모다 영혼의 참된 부를 남겨주라고 권고합니다.
여러분도 보시잖습니까? 손줄 뻘 되는 청년들이 정신적으로 헛된 것을 쫓고, 물질주의에 탐닉하고, 약에 취하고, 자기 삶을 건사하지 못해서 집에만 있는 모습을 보며 과연 우리가 무엇을 전해줘야 할까요? 좋은 것은 자신만 갖고 쌓아둘 것이 아니라 더 가치있는 것을 붙잡아 나눠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