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3주일.

2023. 9. 9. 오후 12: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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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3주일. 에제 33,7-9; 로마 13,8-10; 마태 18,15-20

 프랑스 문학가인 로맹 롤랑의 시로 시작합니다. 형제들이여, 우리 서로 가까이 앉자. 우리를 떼어놓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자. 적이란 존재치 않는 것. 이 세상은 다만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들만이 존재하는 것. 우리가 계속 누릴 수 있는 행복, 유일한 행복이 이 세상에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면서 사랑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왜 가까운 사람들과 멀어질까요? 불행은 늘 주변에 있고요. 늘상 다가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다가온 불행을 상대방의 탓으로 돌리는 방법을 쓰며 자신을 면피(免避)하는 방법을 택하는 것은 어찌보면 용기가 없어서 일지 모릅니다. 상처를 마주 대하는 용기가 없었던 거죠. 이건 그 사람을 비난하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문제는 내 안에 있던 것을 제대로 바라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건데요.

 오늘 말씀이 와닿습니까? 2독서의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내용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요. 여기서 먼저 볼 게 있지요. 사랑도 잘해야 합니다. 나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가? 아니면 허상의 어떤 것을 세워놓고 그런 사람이라고 믿고있는가? 관심종자라 일컫는 관종처럼 나를 바라봐주지 않는 상대방이 미운가?’ 등이죠. 단순히 계명으로만 보면 답답하기 이를 데 없는 말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실상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랑이 어디까지인가? 그 사랑이 현실로 어떻게 실천되게 하고 있는가?’를 물어볼 때, 우린 알게 됩니다. 대단히 선을 그어놓고 있었던 사랑이었음을요. 선을 그은 사랑은 처음부터 한계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주님은 제안을 하십니다. 1독서에 네가 악인에게 그 악한 길을 버리도록 경고하는 말을 하지 않으면 그 악인은 죄 때문에 죽겠지만 그가 죽은 책임은 너에게 묻겠다.” 복음에도 비슷한 말이 나옵니다.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타일러라. 그러나 그가 말을 듣지 않거든,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라. 교회에 알려라. 교회말도 듣지 않거든 다른 민족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일단 시도하는 자세를 만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을 건지려고 애쓰는 자세지요. 그래서 상대의 말을 마치 하느님의 말처럼 받아들이는 화답송 구절이 나왔습니다. 오늘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듣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말인데요.

 이제 현실적인 얘기도 해보겠습니다. 머리로는 용서한다지만, 느낌과 몸까지 용서하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이 점을 모르면 상대의 속이 비좁다고 여기거나, 나는 용서하기 힘든 사람이라고 탓할 수 있습니다. 분명 상처는 받았고 아직 흔적도 남아있습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자기 인정입니다. 나를 인정하는 것, 그런 나를 사랑하는 것, 그럴 때 상대의 결핍도 보입니다. 그 점을 헤아려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얽매였던 것을 풀고 해체해주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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