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9주간 수요일
교회가 교회답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과정을 거쳐왔습니다. 헌데 여기 모인 사람들의 생각도 다 제각각이구요. 자기에게 유리한 증언만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교회가 용서와 사랑을 하라는데 그게 가능하려면 필요한 조언 등은 무엇일까요?
예전 어떤 청년이 찾아와 묻습니다. ‘이곳에 들어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래서 ‘세례를 받고 시작하면 됩니다.’ 했더니 ‘세례를 받으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니 그냥 다니면 안되나요?’ 말합니다. 그 성당은 비슷한 또래의 청년들이 많았기에 본인도 여기에 동참하고픈 모양이었습니다. 마치 그 성당 주변에는 차가 많이 다니는 사거리 지역이라서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여기 차가 참 많은데요. 운전면허 따는 게 시간 걸린다고 그냥 차 몰고 다니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사고가 나지 않겠어요? 믿음도 그래요. 막 믿으면 광신도나 맹신도가 되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지 아시겠습니까? 용서와 사랑이 가능하려면 먼저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가 필요한데요.
모세가 왜 낙원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을까요? 아직 기력이 있음에도 말이죠. 물론 그만한 예언자가 다시 나지 않을꺼라는 하느님의 칭송도 있었습니다만, 그는 하느님을 시험한 적이 있습니다. 탈출기 17장, 민수기 20장에 나옵니다. 바위에서 샘을 터뜨린 것은 목말라 하는 백성을 위함도 있었지만 하느님께 원망했고 백성들 때문에 화가나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물을 통해 갈증이 해소되었지만 결과만 좋다고 진정한 해결은 아니었지요.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순종한 결과는 아니었던건데요. 복음에 두 사람, 세 사람이 갔는데도 말을 듣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요? 자신의 생각에 갇혀 있었기 때문인데요. ‘자기가 만든 세상’이 행복하다고 여겨서요.
마찬가지입니다. 고해성사가 잘 되려면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는 ‘성찰’이 중요합니다. 자신을 봐야, 수긍을 해야, 용서와 사랑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헌데 뻣뻣하게 굴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살면, 오히려 사람들이 혀를 차고 피하는데요. 여러분들의 갈등은 어떻게 해결하시고 있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