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8주간 월요일. 민수 11,4-15; 마태 14,13-21
뭔가를 배운다는 말은 단순한 기술을 얻은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사실 그게 되려면 많은 것을 변화시켜야 하고요. 할애해야 합니다. 주어진 24시간에서 평소 하던 것을 빼야 하고요. 예전 방식과 습관을 탈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나 성경공부도 그렇습니다. 꾸준히 하고싶다면 예전의 것에서 벗어날 때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 각오는 되어 있습니까?
이집트에 갇혔던 백성이 왜 모세를 따랐을까요? 예수님을 따르려고 광야로까지 나왔을까요? 얻고 싶었을 겁니다. ‘자유’를 만나고 싶어서.. ‘말씀’을 듣고 힘을 얻고 싶어서지요. 근데 이것이 그냥 주어지지 않습니다. 쉽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불평을 쏟아냅니다. 당장 먹을 것이 없어 보이니까 현실에 매달립니다. 간혹 저는 이런 질문을 합니다. ‘처음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려했던 사람들이 왜 냉담으로 빠지고, 믿음이 식을까요?’ 그러면 들려오는 답변은 ‘먹고 살기 힘드니까요..’ 라고요. 하지만 진짜 이유는 아닙니다. 현실이 어려워도 하고 싶은 것은 하는 게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지요. 밤에 허기가 질 때 이런 말을 합니다. ‘아 치킨이 먹고 싶어, 피자가 먹고 싶어’ 라는 말은 가짜 배고픔이라고요. 진짜 배고프면 무라도 씹어먹을텐데 그러지 않는다고요. 우린 그 밑에 깔려있는 것을 봐야 하지요. 나에게 속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젠 우린 제대로 봐야 합니다. ‘내가 과연 어떤 분을 믿으려 하는 지’ ‘무엇이 내 마음을 기울어지도록 만들었는지’ 를요. 그것을 보지 않으면서 한다면 그냥 하는 것이 됩니다. ‘매일 미사를 안 나오면 뭔가 기분이 마음이 불편하고 께름칙하니까’ 라는 답변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내 기분을 만족시키는 것이 믿음은 아니지요. 나를 봉헌하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정성 속에서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한 것이 오히려 오히려 올바른 믿음이겠지요. 그냥 들을 때는 배운 것이 완성되지 않습니다. 해보고 실천할 때 그게 되는 것이지요. 당연히 곤란이 생기고요. 현실의 어려움에 닥칩니다. 그것이 없는 삶은 가짜지요. 여러분은 진짜를 만나러 오셨습니다.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받아들이며 나아가야 하는데요. 다가오는 불편함을 어떻게 이겨나가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