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2023. 7. 31. 오전 7: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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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탈출 32,15-34; 마태 13,31-35

 내가 하던 일이 다 중요하게 여겨져서 아무 것도 못 버릴 때가 있습니다. 여태껏 해왔던 것이 아까워서 계속 할 수 밖에 없다고 여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압니다. 이게 최선은 아니다 라고요. 뭔가 결단을 내려서 상황을 바꿔야 하는데, 이렇게 죽치고만 있으면 안된다 는 건 알지만 문제는 바꾸질 못하고 이러고 있습니다. 이제 무엇이 필요할까요?

 요새 사람들은 탓을 잘합니다. 심지어 고해성사를 하는 와중에도 핑계꺼리를 찾습니다. 고해가 아니라,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이 모양이 되었다’ 며 고발을 하며 내 잘못에 물을 탑니다. 이건 오늘 독서에도 나옵니다. 모세가 하느님께 계명을 받으러 올라간 사이 사람들이 우상숭배를 벌입니다. 모세가 이걸 알고 어찌된 것이냐? 물으니, 잠시 백성들을 책임지던 아론이 핑계로 자신을 방어합니다. 이 백성이 악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아시지 않습니까? 금붙이를 던졌더니 이 수송아지가 나온 것입니다.” 하느님의 눈보다 사람 눈이 더 무서워 그들 요구에 동조한 것이지요. 오늘 이냐시오 성인의 기념일을 맞이하면서 그가 왜 영신수련을 중요시하였는가?를 알게 됩니다. 우리가 아는 소설 돈키호테처럼 유명한 기사가 되고 싶어한 그는 전쟁에서 부상으로 병원에 있으면서 깨닫습니다. 내가 헛된 것을 쫓았구나 라고요. 사실 부귀영화, 명예 등은 바람 같은 거지요. 손에 쥐려고 했지만 안될 때는 시대가 나를 몰라본다 고 탓하고요. 가졌다고 여겼을 땐 이미 옛날 일이 되었습니다. 진짜 문제는 현실을 살지 못하고, 자꾸 과거와 미래를 그리워한다는 점이지요

 여기에 이냐시오는 무질서한 자기 애착을 끊고자 합니다. 그러면서 원리와 기초를 세웁니다. ‘사람은 주 하느님을 찬미하고 섬기며 자기 영혼을 구하도록 창조되었다. 그 영혼은 다른 사람들을 돕는다. 그래서 그 목적을 위해 사용해야 하며 방해된다면 제거해야 한다. 그러면서 이런 제시를 합니다. 병보다 건강을 원하지 않고 가난보다는 부를 원하지 않고, 불명예보다 명예를 원하지 않고, 단명보다 장수를 원하지 않으며 자기 애착을 끊으면서 내가 창조된 목적을 찾아야 한다고요. 겨자씨 비유처럼 애착을 끊는 일이 작은 것 같지만 나중에 큰 나무가 되듯이 하느님을 알고 나를 세우는데 누룩같이 큰 효과를 일으키는데요. 현재 여러분은 어디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그렇게 중요한 일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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