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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마 사는 이유가 있다면 ‘나름 가지고 있는 생각’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이 정확하고 문제가 없으며, 남에게도 자신있게 주장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헌데 가끔 난감한 문제가 발생하곤 합니다. 여기서 ‘나름’ 이라는 이유는 실로 근거가 부족하거나 나만의 생각으로 점철된 경우가 많기에 결국 오판으로 흘러가는 사태도 맞이하는데요.
독서에 야곱은 꿈에서 천사를 만나며 후손이 많아질 것이란 약속을 받습니다. 아직 그는 장가들기 전입니다. ‘젊음의 패기’ 가 있던 그에게 다가온 계시를 받고서 그는 탄식합니다. “진정 주님께서 여기에 계시는데도 나는 그것을 몰랐었구나” 예수님은 병자들을 고쳐주시면서 이미 죽은 회당장의 딸을 보면서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는 말에 사람들은 그저 비웃습니다. 사람들의 비웃음을 보며 여러분은 무엇이 보이시나요?
이런 이야기들은 종교의 본질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 당신께서 개입하시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나름의 생각’을 철저히 밟고 무너뜨리십니다. 그 망가짐에 대해 ‘자존심이 상한다’ 라고 말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가지고 있던 것들이 ‘얼마나 보잘 것 없고 생각이 짧았는가?’ 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 바꿔말해 당신 앞에 완전한 항복을 할 때 비로소 주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주어짐이란, 주님께서는 그런 이들에게 더 자신을 드러내보이시며 나 또한 무너졌기에 교만하지 않고 당신에 뜻에 따를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인정합니다. 사람들이 보였던 비웃음을 이내 입닫게 만드는 당신의 전능한 체험을 통할 때 우리가 가지고 있던 것들이 얼마나 협소했던 것이었는지 알아차립니다. 이것이야말로 지혜요, 이로인해 우린 새로운 탄생을 경험합니다.
여태껏 어떤 인생을 살아오셨습니까? 사람은 ‘자신이 인정받을 때’ 살아있는 가치를 느낍니다만, 반면 ‘자신의 한계를 마주 대할 때’ 비로소 살아있음의 가치를 알게 되기고 합니다. 여러분은 그동안 어떤 쪽에 더 가까운 삶을 살아오셨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