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1주간 화요일

2023. 6. 20. 오후 6:2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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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1주간 화요일. 2고린8,1-9; 마태 5,43-48

 기도하는 사람은, 늘 도전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직면할 때에야 비로소 내가 무엇을 불편해 왔는지, 간과했는지 그제서야 알아차립니다. 그 도전은 더 큰 사랑, 더 큰 선함으로의 초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이들의 느끼는 입장은, 초대라기보다 무모한 도전, 불가능하게 여겨지곤 합니다. 그 이유는 남들은 그렇게 안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당신은 불가능해 보이는, 이 불편한 안을 제시하는 이유가 뭘까요?

 기도하는 이들은, 늘 가지고 있는 본능이란 성()을 탈출할 채비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그 본능은 처음에는 나를 지키는 것이라 여겼지만 결국엔 다른 이에 대한 사랑은 없는 외로움으로 날 이끌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와 생각의 사이즈가 다르십니다.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 비를 내려주신다.” 순간 왜 그러세요?’ 라고 따질만 합니다. 가만히 자연의 동식물을 보면 그렇습니다. 강한 동물은 모든 동물을 집어삼킬 나름의 무기가 있지만 힘없는 동물도 그 안에서 살아갈 재주가 있습니다. 그 능력을 가지고 자기의 삶을 열심히 살아갑니다. 우린 동물보다 나은 존재이죠. 그렇다면 본능보다 더 큰 차원으로 건너가야 하는데요. 여기에 독서의 바오로는 이런 말을 합니다. 극심한 가난을 겪으면서도 아주 후한 인심을 베풀었습니다. 아니 그 이상으로 기꺼이 내놓았습니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해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 

 내가 가진 사랑으로만 살아간다면 그 정도 수준일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우리에게 제시하면서 초대합니다. ‘더 큰 것도 있다. 그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그러니 그 사랑을 세상에 제시하며 아름다운 세상, 하느님의 나라를 여기서부터 시작해보자라고요. 저는 그런 것을 만나고 싶습니다. 나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주님의 초대에 응할 때 변화되는 나 자신부터 만날 때, 우리의 인생은 한층 새로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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