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2고린 9,6-11; 마태 6,1-18
다른 이와 다르게 우리의 영성은 ‘고요한 영성’입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조용하면서도 할 일을 합니다. 마치 꽃이 피어 향기가 널리 자연스레 퍼져나가는 타입입니다. 이를 알고서 벌, 나비가 알아서 찾아옵니다. 그러면서 나름의 역할을 합니다. 물론 꽃이 가만히 있지는 않습니다. 좋은 것을 내놓으려 부단히 무언가를 합니다.
오늘 복음이 그렇습니다 . ‘내보이지 않지만 내세우고 있고’ 요. ‘드러나지 않지만 드러냅’니다. 그리고 이런 자세가 나올 수 있는 근거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좋은 의도를 헤아리시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이런 버팀목이 없는 근거라면 어떤 행동이 나올까요? 자기를 드러내느라 홍보하고,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치장할 것입니다. 당연히 천박한 행동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기념일을 맞이한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가 왜 자신의 좋은 신분 처지를 관두고 나왔을까요? 본인은 보았을 겁니다. 귀족 가문의 이중성과 천박함을 경험했기 때문인데요. 그가 귀족으로 태어난 것을 선택할 수는 없었으니 17살 무렵, 자신을 살리기 위해 참되게 살고자 새로운 삶을 살려고 어려운 이를 돌보는 삶을 선택합니다. 이러한 조용하면서 할 일을 할 때, 독서 말씀처럼 “씨앗을 마련해주실 뿐만 아니라 여러 곱절로 늘려주시고, 열매도 늘려주시는..” 체험을 주실것입니다. 그러기에 부지런히 지치지 말고 우리의 일을 해나가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