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9주간 금요일

2023. 6. 9. 오전 6:4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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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9주간 금요일

 모든 것은 그 시대의 요청과 부합됩니다. 우리가 유행에 아주 민감한 사람들은 아니지만 그 시대가 바라고, 그 당시 사람들의 원함을 들어주고 요청할 때 뭔가가 이뤄진다고 믿곤 합니다. 조선시대 유교사회였던 때에 왜 사람들이 천주교에 대해 열광하며 순교자가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열심히 믿었을까요?태생적 신분계급이 주는 한계의 문제점을 봤고요. 만민이 평등하다는 하느님 아래서 모든 이가 같다는 사상이 그들을 매료시켰기 때문입니다. 영성도 그러합니다. 그 당시 시대와 아주 무관하지 않습니다. 시대가 느끼는 갈증을, 문제점을 보완해주었기에 사람들이 좋아라 했습니다. 시대의 징표이지요. 헌데 우리 교우들이 지금 뜨듯 미지근한 삶이라면, 주님을 믿으면서도 막막한 느낌뿐이라면 우린 반성해야 합니다. 무엇이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지를 말이지요.

 복음에서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의 문제점을 말씀합니다. 많은 이들이 다윗의 자손이시여, 자비를 베푸소서 라고 말해왔습니다. 헌데 이 말은 한편으로 맞고, 한편으로 그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맞다는 건 예수님이 다윗과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족보상의 계열은 맞지만, 주님은 실상 다윗보다 훨씬 이전부터 계신 주님입니다. 게다가 당시 시대는 로마의 압제하에 있었기에 군사적으로 힘있는 메시아를 원했습니다. 허나 당신은 군사적인 메시아가 아님을 말씀합니다. 예수님 말씀에 사람들이 기쁘게 들었던 이유는 자기네의 요청보다 더 큰 것을, 현세적인 만족을 넘어선 영원한 생명을 주시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는 토빗기의 정점입니다. 억울하게 재난을 맞은 토빗이 눈을 뜨게 되었고 집안이 모두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자기들이 직접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우린 시대의 요청도 들어야 하겠으나 당신의 더 큰 은총을 준비하고 기다리며 맞이해야 단지 내가 원하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의외성이 오히려 예상한 기쁨보다 더 큰 것을 주실 수 있는 분임을 알게 하시려는 의도이고요. 거기에서 내 만족 충족이 전부가 아님을 알면서 차원이 다른 사랑을 경험케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에 젖어들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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