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6주간 화요일
예전과 다르게 정보를 얻는 루트가 많아졌습니다. 이는 전문적이지 않은 우리 같은 이에게 다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엔 몰랐기에 하지 못했던 것을, 이젠 들어봤기에 시도라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반면 그 정보가 완전하지 않은 ‘편협한 조각’ 일 때가 많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저렇게도 할 수 있는 것’ 에 대해서는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인 양 여기는 태도는, 겸손이 아닌 오만함과 교만함으로 나를 이끕니다. 교회로 따지면 교희를 오래 다니다보니 이면의 그림자를 봤습니다. 인간적으로 당장 실망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요?
여기서 잠시 예수님의 제자,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 유다가 왜 자신의 결말을 그리 끝맺었을까요? 살펴보지요. 그는 나름 똑똑했고요. 제자들 사이에서 회계를 담당할 만큼 출중했습니다. 하지만 그 너머의 것을 만나자,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서 그렇게 결말을 맺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신을 너머서는 것을 어찌 다루고 해결해야 하지를 몰랐던 것이 그의 한계였던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성령에 의해 감옥의 문이 열립니다. 이에 간수는 자신의 책임이라 여겨서 자결하려고 합니다. 인간적으로 책임있는 자세일 수 있습니다. 허나 그 원인은 인간의 것이 아닌, 그 이상의 힘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바오로는 그를 살리고요. 간수도 새로운 삶을 부여받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한다지만 많은 경우,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삽니다. 아니 그러길 스스로 원하고 있고요. 그런 선택을 하고맙니다. 여기엔 하느님도 중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자신이 하고픈 것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처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해봤잖습니까? 꼭 좋았습니까? 결말까지도요?
주님은 자신의 일을 하시고 우리가 잘 설 수 있도록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나는 안 보이는 그 힘을 느끼며 답을 찾아가고 있습니까? 내가 조금 아는 그것에 속박되지는 말아야 하겠습니다. 아직은 진리의 편협한 작은 조각을 쥘 뿐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