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4주일 성소주일
강론에 앞서 외국 유머를 말씀드려봅니다. 한 주교님이 미사 중에 신자들에게 강론을 하십니다. 강론의 내용은 요즘 들어 성직자, 수도자의 수가 예전에 비해 부족해지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면서 주교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현대의 많은 가정에서 자녀를 하나만 두고서 다른 직업을 택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집집마다 자녀를 셋을 가지게 하여, 하나는 아버지가 되게 하고, 또 하나는 어머니가 되게 하고,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교회를 위해 일하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강론하셨습니다. 며칠 후, 주교님은 동네를 한 바퀴 도시다가 대형마트에서 임신 중에 있던 교우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여성은 동네에서 주교님을 보자 너무 기뻐서 큰 소리로 주교님을 보며 이렇게 외칩니다. “주교님! 뱃속의 이 아이가 주교님 아이에요.” 오해 마세요. 셋째를 준비한다는 이야기죠.
저는 덕을 보고 자랐습니다. 그 덕은 교회에서 덕봤다는 말씀입니다. 어릴 때 꿈이 신부님은 아니었지만 무녀독남으로 자란 저는, 주일학교를 통해 교회에서 알려주는 많은 것을 자양분 삼아서 자랐고요. 결국 제 뜻을 바꾸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계기는 수사님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의 남루한 복장과 달리 즐거워하는 표정에서 저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 기뻐하지?’ 였습니다. 의아함과 신기함을 가지며 관심을 가진 것이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데요. 모두가 그렇잖습니까? 행복하려고, 기쁘려고, 자신의 삶을 택하니까요.
잠시 교회의 상황을 보겠습니다. 교회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신자수를 늘이고, 교회수를 늘이고, 행사를 많이 하던 양적인 성장의 시대였습니다. 여러분도 이미 경험하셨습니다. 재미있지요. 잔치도 하고, 흥겹습니다. 저도 그런 혜택을 받아서 덕을 봤지요. 하지만 그렇게 몇 십년을 해봤지만 뭐가 남았나요? 교인 수는 늘었지만 반면 냉담자도 늘었습니다. 한 해 100명 200명 세례를 받았던 이가 10년이 지나면, 천명, 이 천명이 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지요. 하고 싶은 활동만 하려들고, 정작 해야할 것은 피하는 이가 생깁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뭐가 남았을까요? 기도, 성경읽기 등 기본은 망가지고, 하고 싶은 것만 하려 들었습니다. 당연히 영양 가득한 골고루 식사를 한 것이 아닌, 맛있는 반찬만 먹는 편식 위주의 식사처럼 하고싶은 것만 하려는 것은 결국 공동체를 점차 허약하게 만듭니다. 그럼 질적인 성장이 필요한데요. 그게 뭘까요? 얼마 전, 몇몇 교우분들의 요청으로 본당 홍보물 겸, 간단교리상식이 적힌 인쇄물을 만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가져가셨습니다. 이는 좋은 일이지요. 관심이 있다는 뜻, 평소 알고싶은 갈증 해소를 원하셨다는 뜻이 됩니다. 반면 이런 것도 보입니다. 거기에 담긴 내용이 대단히 심도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소개’ 정도에 불과합니다. 더 깊이있는 차원의 것도 있지만 많은 분들이 부담스러워 하십니다. 이런 허약한 체질의 시대에 빈틈을 노린 이들이 접근합니다. 복음에 나온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입니다. 그들이 누구일까요? 예를 들자면 며칠 전 저를 만나러 직접 자기 발로 찾아온 신천지 같은 사람들입니다. 솔직히 면담 신청서를 보고서 놀랐습니다. ‘얘들이 이제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라는 표현밖에 할 수 없습니다. 우린 이미 경험했잖습니까? 그전부터 이단으로 문제가 있었지만 코로나로 교주가 큰절까지 하며 사죄한 이들이 이제 대놓고 신부를 찾아오고, 다른 본당에 인쇄물까지 직접 주고 간다는 대담함에 여러분은 무슨 느낌이 드십니까?
그들과 1시간 정도 대화를 하며 몇 가지 소개합니다. 왜냐하면 오늘은 게다가 성소주일입니다. 나의 부르심이 확고하기 위해선 낯선 이들이 무엇을 노리는 지 알아야 하니까요. ① 입만 살아있다 – 체험은 없이 그저 자기네가 말하는 것만 늘어놓는다. ② 묵시록을 거론하며 자기네가 말하고픈 성경구절만 늘어놓는다 – 성경을 중요하게 여긴다면서 전반적인 이해는 없습니다. 구약과 신약에서 재앙, 영원한 생명만 늘어놓습니다. 여기에 전반적인 성경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넘어갈 수 있습니다. 천주교에서 많은 이들이 유혹을 당했지요. 그들은 사람이 가진 '불안함' 을 가지고 접근합니다. 불안은 그나마 가진 신앙심을 먹어치우기 때문입니다. ③ 당연히 성부 하느님, 성자 예수님, 성령의 삼위일체의 신비를 거론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연관성을 잘 모르고, 편협한 관념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④ 이들에게 ‘이단’ 이라고 얘기하면 발끈합니다. 발끈한다면 들켰다는 뜻이지요. 결국 내가 하느님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 지 평소 살펴야 하겠습니다. 교회 전반에 관해 두루 모르면 여러분은 흔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안에서 확신하지 못하면, 증언하지 못하면, 그야말로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어렵게 얻은 것을 쉽게 잃지 않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