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만찬 성목요일
처음 가보는 길을 가보신 적이 있습니까? 요즘이야 네비게이션도 있고요. 앱에 깔린 지도가 있어서 가야할 곳의 위치, 도착시간, 교통편이 잘 나와있지만 그런 것이 없이 갈 때 느끼는 ‘마음의 거리’는 길고도 막막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다가 다시 그곳을 가게 되면 예전에 느낀 막막함과 다르게, 생각보다 참 짧다는 것을 느끼는데요. 초행길이 주는 부담감이 있지요. ‘이 길이 맞는가?, 이렇게 가야하는가?, 왜 그래야 하지?’ 하는 의문이 들지요. 그러다 점차 알게 됩니다. 그건 ‘역사의 시작’ 이었다는 것을요.
1독서는 이집트 탈출을 위한 빠스카 역사의 시작이었습니다. 빠스카. ‘거르고 지나가다’ 는 뜻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문설주에 발랐던 양의 피는 맏아들이 죽는 10가지의 마지막 재앙을 피하는 표시가 되고요. 이는 선택받은 구원의 표지가 되어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때는 “이것은 내 몸이다. 내 피다” 하면서 맺어준 새 계약과 함께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표양은, 서로를 용서하라는 당신의 희생으로 보여주신 역사의 시작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다들 어리둥절했지요. ‘왜 이래야 하지?’ 이런 것을 본 적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나중에 알아차립니다. 마치 십자가에 주님이 달리시자 어떤 이가 이런 탄식을 하지요. “이분이야말로 하느님의 아들이셨구나” 우리가 왜 매일, 매년 이것을 반복하고 있을까요? 의미를 모르면 그럴 수 있겠습니다만, 한편으로 우린 알지요. 이로인해 구원의 기쁨이 시작되었다는 것을요. 하느님이 인간의 역사 안에 들어오시어 새로움을 주시었고 예전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깨끗하게 정리하시며 나를, 우리를 선택하셨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이게 단순히 요식행위일까요? 단순한 되새김일까요?
아닙니다. 이것은 역사의 시작이었습니다. 지금까지 2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것이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노력과 힘을 넘어선 그 무엇이 있기에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별 문제가 없는 한 앞으로도 이어질 것입니다. 이 안에서 우리의 생각을 넘는 경이로움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그분의 배려에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나의 삶도 달라질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