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3주간 월요일

2023. 3. 13. 오후 12:3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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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3주간 월요일

 자기 방식대로의 생각과 삶은 한계에 처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갇힐 수 있지요. 여기서 다가오는 제안을 누가 해주지만 그것이 오히려 의심스럽고, 이해가 되지 않고, 불친절한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오늘 독서 상황이 그렇습니다. 아람의 장군 나아만은 나병을 치료코자 이스라엘에 옵니다. 나병은 꼭 한센병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악성 피부병도 이렇게 일컫곤 했습니다. 당시 질환의 세밀한 구분이 되지 않은 시대였으니까요. 그가 온다고 하자, 갑자기 이스라엘 임금은 옷을 찢으며 흥분합니다. 이건 그의 오해였고요. 여기에 엘리사 예언자는 심부름꾼을 시켜 요르단 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 고만 전합니다. 나아만 입장에서는 심히 불쾌할 수 있습니다. 엘리사가 봐준다거나 약을 발라준다거나 대면해 처방해주거나 하지 않고, 이른바 나와보지도 않고 이런 말만 듣고 있으니 화를 낼 만도 합니다. 여기에 그를 잘 말리며 하게끔 권하자, 그도 순순히 따릅니다. 그러자 병이 낫지요.

 복음에서 예수님이 나아만을 언급하면서 시렙다의 과부 이야기도 언급합니다. 과부는 남은 밀가루 몇 줌과 기름으로 빵 만들어서 자기 아이와 먹고 죽을라고 했는데, 엘리야 예언자는 오히려 그 빵을 만들면 자기 먼저 달랍니다. 그 후에 가족보고 먹으랍니다. 우리 같으면 화낼 만합니다. ‘이거 무슨 경우인가?’ 무례하게 보일 수 있지요. 하지만 일단 그녀는 따르고요. 결국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체험을 합니다. 어떤 제안을 따를 때, 이처럼 비이성적이고, 예의 없이 무례해보이고, 자기 자존심마저 굽히길 강요하는 사안이 발생합니다. 이거 어떻게 보십니까?

 예전 성철 스님은 자신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삼천배를 시켰다고 합니다. 직위와 신분에 관계없이요. 그런 이유는 부처님을 보러 왔으면 그분께 인사드리는 것이 먼저라면서 자신을 만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고, 절을 하면서 자신을 낮추며 바라보길 바랬다는데요. 근데 삼천배 하는데 몇 시간이나 걸리는 지 아십니까? 불교신문에 나온 건데요. 1965년 경 전국 대학생 불교연합회가 여름방학 때 유명 사찰을 돌며 스님들에게 법문을 듣는 프로그램을 가졌답니다. 성철 스님을 만나자 여지없이 삼천배를 시켰고요. 일단 시키니까 하는데 삼백배를 넘으면서 불평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답니다. 안 그래도 여름인데 덥고 몸도 힘들고요. 여기에 지도교수는 너무 흡족했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학생들이 대신해주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체면상 학생들을 다독거렸고, 2천배를 넘어설 때는 나머지 천배를 무슨 생각을 하면서 했는지 모를 정도로 아무 생각없이 했답니다. 그리고 끝난 후, 모두들 숙연해졌답니다. 자기를 내려놓음이 뭔지 알았기 때문이랍니다. 그날 대학생들이 절을 했던 시간은 8시간이었답니다. 우리도 고해소에서 무릎을 꿇지요. 그건 자신의 자존심마저 내려놓고 접으려는 시도가 아니겠습니까?

 평일미사는 30, 주일 미사는 1시간이란 법칙이 없지요. 그런데 우린 정성없는 빎이 오히려 우릴 망치는 것은 아닐까 보게 됩니다. 우린 나를 어떻게 꺾으면서 주님을 만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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