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6주간 금요일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만, 태어날 때 손을 움켜쥐고 자신의 뜻대로 태어났던 아이들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그 손이 풀어지고 손을 편 채 세상을 등집니다. 이런 관찰력이 가능했던 이유는 자신도 세상에서 많은 것을 겪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많은 발전, 고도의 성장, 생활의 윤택함은 편안함을 가져다주었고 그로인해 소위 ‘자기 잘난 맛’ 으로 세상을 사는 착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어쩌면 세상을 기쁘게 살 수 있는 원동력은 ‘자기 착각’ 일 수도 있는데요. 그래서 오늘 독서처럼 오만함이 극에 달합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사람들의 삶에 편승하여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오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말씀하시죠.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십자가가 불편하고, 부담스럽고, 피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각자가 져야 할, 모두가 피하지 말아야 할, 그러면서 동반해야 가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에서 목숨이란 단순히 사람이 살고 죽는 생명이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것이란 뜻으로 알아듣는다면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사람다움을 잃는다면’ 당신이 말씀하려는 의도와 더 와닿을 텐데요.
주님께서 사람을 왜 만드셨고, 예수님은 그 사람들을 왜 구하려 드셨을까요? 알렐루야에 나옵니다.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주었으니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부른다.” 당신의 의도와 마음을 읽으면서 참답게 사랑스럽게 살자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잘 받아들이면서 하느님의 것을 잘 지켜나갈 때 나 자신 또한 건강하게 지켜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