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4주일

2023. 1. 28. 오후 2:02:40

글자

연중 4주일. 스바 2,3-13; 1고린 1,26-31; 마태 5,1-12

 여러분의 상황은 이른바 아귀가 딱 들어맞습니까? 앞뒤가 뒤틀리지 않고 딱 들어맞느냐?를 여쭈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도 그런 경우가 생깁니다. 오늘 복음처럼 행복하여라하시는데 과연 우리가 생각하고 예상한 행복과, 실제 예수님이 말하고픈 의도의 행복이 합치되고 있습니까? 교회정신과 여러분이 딱 들어 맞느냐는 것입니다.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그럴까요?

 예전 2천년 전도 넘는 기원전 380년경, 철학자 플라톤이 지은 국가라는 책 7권에 동굴의 비유라는 것이 나옵니다. 동굴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여기에서 태어났습니다. 현재 모두 꼼짝없이 묶인 상태입니다. 모두 동굴 벽만 쳐다보게 하고요. 뒤를 돌아볼 수 없습니다. 여기에 그들 뒤에 불을 피워놨습니다. 다른 곳은 다 깜깜하고 벽만 환하게 보이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뒤에서 인형 모양의 그 무언가를 지나다니게 합니다. 당연히 묶인 사람들은 그것의 실체 모양인 눈, , , 옷 색깔 등의 진짜 상황을 알 수 없고요. 다만 인형 모양의 깜깜한 그림자만 볼 뿐입니다. 여기에 누군가 포박을 풀고 탈출합니다. 그리고 진짜 세상을 봅니다. 당연히 총 천연색 칼라의 색깔과 현실을 봅니다. 그동안 보아 온 것은 그저 그림자에 불과했음을, 실제가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제 이것을 여전히 묶인 동료들에게 말해줘야겠다싶어서 그는 다시 동굴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밖의 현실을 알려줍니다. 이제 그것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을까요? 환영받고 고마움이 아닌, 비난과 욕설이었습니다. 왜냐고요? 반응이 이랬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가 여태껏 속아온 것이라고? 너만 진리를 안다고 자랑하는 거야?’ 게다가 동굴에 돌아온 이는 밖의 환한 상황을 보다가 갑작스레 다시 어두컴컴한 동굴로 들어왔기에 아직 어둠이 적응되지 않아서 헤매고 있습니다. 여기에 한 소리를 더 하지요. 지금 너는 동굴에서 앞도 못 보고 있는데, 네가 한 그 말을 믿으라는 거야?’ 당연히 곱게 보지 않은 이들에 의해 외면을 당합니다. 이 이야기에는 진리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지금 본인들이 동굴에 있지만 그것을 불편하지 않고 쉽게 믿지 않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그것을 깨우쳐 주지만 외면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지은 플라톤의 의도는 이것이었습니다. 지금 내가 사는 이 세계는 현상계이다. 한낱 그림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진리는 현재 보는 것 이상의 것이다.’ 이데아의 세계이죠. 그래서 철학, 문학, 종교의 목표는 더 나은 실제로 나아가는 것이며, 실재 세상에 나아가지 못한다면 인간은 영원히 현실의 노예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앞서 동굴에 포박된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하다고 여기면서 실제 세상을 본 사람을 죽입니다. 사실 예수님도 그래서 돌아가셨는데요. 스스로 거부한 것이죠. 이제 우리가 들은 행복하여라 라는 행복선언을 살펴보겠습니다. ‘가난하고, 슬픈 사람들인데 뭐가 행복하냐?’ 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행복은 지금 현실의 행복을 말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마치 동굴에 갇혀 있는데, 동굴이 편안하고 좋다면, 더 이상 진도는 나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 너머의 삶을 제시합니다. 지금의 삶을 지혜롭게 헤쳐나가며 죽음 너머의 삶을 대비하는 차원을 말씀합니다. 얼마 전, 위령합동미사를 한 이유도 그것이지요. 죽음 너머의 삶을 믿기에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고요. 죽은 그들도 우리가 제대로 된 생활을 하길 원하는데요. 그들이 경험한 죽음을 알려주면서 말이지요.

 사랑하는 인헌동 본당 교우 여러분

 현실의 편안함을 위해 교회를 찾아오는 신자분들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리고 세례받고 냉담하거나 떠납니다. 이유가 뭘까요? 본인이 여긴 행복과 맞지 않다고 여겨서입니다. 그럼 여긴 뭘 제시하는 곳일까요? 교회가 교회다우려면 무엇을 말해야 할까요? 우린 그저 값싼 평화나 행복을 바랄 때 곧바로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임신부가 되면 교구장님께 서약을 합니다. 제가 서명한 서약서에 이렇게 쓰여있더군요. 교회의 이름으로 맡겨진 저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신앙의 유산을 온전히 보존하고 충실히 전달하며 설명하겠습니다. 그리고 교리에 반대되는 온갖 이론을 물리치겠습니다.’ 솔직히 그동안 이런 진리를 잘 설명해주지 않고 그냥 넘어간 경우가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당장에 들을 비난이 두려워서, 욕먹기 싫어서, 지금의 상태만 편안하게 대해주는 것이 교회라고 잘못 오인시킨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편안하기만을 바랬습니다. 누가 욕먹고 싶어하겠습니까? 하지만 우린 속여서도 안되고, 속아서도 안됩니다. 그러니 먼저 내가 알고, 믿고 있는 것을 잘 따져봐야겠습니다. 무턱대고 믿어서도 안되고, 무작정 내 생각에 취해서 거부해서도 안됩니다. 주님의 행복 선언의 참 정신을 받아들이려면 우리의 편견이나 착각에서 해방되어야 하는데요. 당장 거부반응이나 혼란이 오더라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린 그 진리를 만나러 왔기 때문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진실을 마주 대할 용기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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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4주일

신부 :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죠? 봉달아 간만에 인사해~

봉달 : ~~ 안녕이에요~ 여러분~ 모두들 행복하세요~

신부 : ~ 오늘 복음이 예수님이 말씀한 행복선언이라서 일부러 그런거야?

봉달 : 그렇다고 말해야 신부님이 좋아하시겠죠? 근데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뭐가 행복이에요?

신부 : 그래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반대로 이렇게 질문할께요?

          봉달이는 뭐 할 때 제일 행복해요?

봉달 : 학교에서는 점심 식사 때요. 그리고 길에서는 오뎅 먹을 때요.

          밤에는 치킨 배달해 먹을 때요.

신부 : 그래.. 네가 그럴 줄 알았다.. 먹을 때가 제일 좋지..

          헌데 시간이 지나면 또 배고프잖아~

봉달 : 그렇지요~~ 그래서 계속 먹어야 해요. 멈추면 안되요~

          행복은 계속 쭈욱 진행되어야 하니까요~

신부 : 그러면 봉달이의 행복은 시간적으로 유한하고, 한계가 있는 행복이네?

          먹고 기분이 좋아지다가 시간이 지나면 불행해지니까 말에요..

봉달 : ... 그건 생각 안 해봤네요? 엄마 지갑이 얇아지는 것만 알았어요

신부 : 예수님이 말씀한 행복은 지금은 비록 가난하고 힘들지만

         그것을 이겨 나가면서 얻는 행복이에요. 그리고 나중에 얻을 행복이죠.

봉달 : 그러면 나중만 생각하는 거잖아요? 전 지금이 행복하고 싶은데...

신부 : 그래요. 우린 지금, 현재를 살고 있어요. 하지만 스쳐지나가는 것들에만

          메이면, 나는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라 현실의 감옥에 갇힌 사람이 되요.

          비록 상황이 내 맘대로 안되지만 예수님의 약속을 믿으며 살 때,

          현실을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고요. 미래도 계획할 수 있어요.

봉달 : ... 그럼 예수님이 말씀한 행복은 지금, 당장만을 말씀한 게 아니라

         하느님이 만드신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주신 선물을

          마련하신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나요? 그럼 저도 잘 준비할래요.

신부 : 그래요~ 우린 예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들이니까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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