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세례 축일

2023. 1. 9. 오전 7:3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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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세례 축일. 이사야 42,1-7; 마태 3,13-17

 예전 것에서 맴도는 편입니까? 아니면 예전 것에서 탈피하고 싶으십니까? 예전 것이 주는 좋은 점이 있지요. 편안하고, 익숙하고, 당황하지 않고요. 허나 그 안에만 맴돌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여러 불합리함, 당연하게 여기지만 실은 발생되는 문제점을 보지 않는데요. 지금 것이 주는 편리함에 가로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예수님이 오신 이유는, 게다가 세례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시려 하셨을까요?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단순히 아들이라서 이쁘지만은 않습니다. 자식 키워보셨지만 내 혈육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집안마다 아픈 손가락들이 있지요. 허나 여기서는 그 아들이 무엇을 하길래 이쁠까요? 이사야 예언서에 나오지요. 그는 내가 선택한 이,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말씀에 계속 나오지요. 그 공정함으로 의로움을 펴고요. 손을 붙잡아주고, 보지 못하는 이의 눈을 뜨게 하고, 어둠에 갇힌 이를 풀어주는 일을 합니다. 예수님이 그런 삶을 보여주셨지요. 같은 세례를 받은 우린 이제 예수님처럼 하고 있나요?

 이미 압니다. 하지만 못했던, 안했던 이유는 용기가 없어서, 두려워서 못했습니다. 하느님의 영을 입은 우리가, 세상에 목소리를 내고, 힘차게 행동으로 바꿀 수 있는데, 우린 귀찮다고, 당장 다가오는 여러 반대가 두려워 가만히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며 명상하셨지만 늘 생활 터전에서 움직이셨습니다. 그러면서 아픔으로 힘들어하던 이들에게 다가가셨습니다.

 복음과 알렐루야에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네 라고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우린 하늘의 음성을 듣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음성에 따라 움직일 때 그르침이 없습니다. 세례를 통해 새로움을 입습니다. 그리고 늘 쇄신하고자 애씁니다. 우리가 받은 세례의 정신을 다시금 되새겨야 하겠습니다. 하던대로, 했던대로, 그 정도만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천 걸음을 가자고 하면 이 천 걸음을 가 주어라 라는 말씀처럼 원래 의도이신 하느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 받은 세례가 제 자리를 잡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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