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2023. 1. 2. 오후 8:05:12

글자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나는 내가 알고 있다고 여기는 것을 말이나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습니까? 물론 말과 글은 좋은 면이 있습니다. ‘무엇무엇이라고 나타내고 드러낼 수 있으니 말입니다. 마치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은 빛이십니다라고 하느님에 대해 표현하는 것을 긍정신학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그동안 해왔던 방식이지요. 여기에 반대의 관점으로 부정신학이란 것도 있습니다. 하느님을 우리의 생각과 말과 글로 다 표현해내지 못하고 이루 다 형언할 수 없기에 하느님은 무엇무엇이 아니다라고 규정하면서 하느님의 무한성을 드러내는 것을 부정신학이라고 말합니다. 이 방식은 아닌 것을 하나씩 걷어내다보면 결국 참된 것만 남는 방식이지요.

 오늘 요한은 고백합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엘리야도 아니다.” 그저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라고 알 듯 말 듯한 말을 합니다. 물론 우린 알고 싶기에 내가 가진 모든 표현수단과 도구로 잡아메서 규정화 시키고픈 마음을 가집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편함이란 진실과 진리와는 관계없이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으로 격하시킨다고 과연 편한 방법일까요? 오히려 편협한 관점일 수 있습니다. 마치 사랑도 내 방식으로만 하면 문제가 생기듯이 말입니다.

 오늘 두 분의 주교학자 기념일을 맞이하면서 이분들은 이단을 물리치며 신앙을 지켜내고 보존했습니다. 하지만 잘 지키고 보존하려면 아닌 것을 잘 걷어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단이 생기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자기 방식으로 이해하려는 시도 때문에 생깁니다. 바실리오와 그레고리오 주교님 시대에 나온 이단이 아리우스주의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하느님의 신성을 갖추지 않았다고 여겼고요. 하느님의 하부 종속개념으로 예수님을 대했습니다. 주님의 신성과 인성이 함께 있음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이는 결국 삼위일체에 대한 거부까지도 이르게 됩니다. 여기서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말이 떠오릅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라고요. 모든 것을 다 규정하고 명명(命名)할 수는 없습니다.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기에 잘 모르를 때는 하나씩 걷어내다보면 결국 제대로 된 것만 남아서 나를 지켜주지 않겠습니까? 그것이라도 잘 지녀야 하겠습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