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주일.

2023. 1. 15. 오전 1: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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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주일. 이사 49,3-6; 1고린 1,1-3; 요한 1,29-34

 무슨 일을 접하게 되면 드는 생각이 이렇지요. 이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거야?’ 직설적이고 발칙함마저 드는 말일 수 있지만, 긍정적으로 굳이 보자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지 알아야 움직이겠다는 뜻도 되겠지요. 우리가 받은 세례가 무슨 효용가치가 있는지, 신앙이 나에게 어떤 싹을 맺어주는 지 모르면 당연히 주님과 거리감이 생길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며칠 전 본 영화가 있습니다. ‘3천년의 기다림이란 제목으로, 병 속에 들어가 지낸 우리가 잘 아는 램프의 요정인 지니가 주인공입니다. 지니는 자기를 꺼내준 사람들에게 3가지 소원을 들어주니까 말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야기를 연구하는 서사학자이기에 소원 들어주는 이야기들은 항상 결론이 안 좋았다면서 소원을 말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지니는 그야말로 멘붕이 왔고, 원하는 게 없는 사람은 처음 봤다면서 병에 갇혔던 자신의 이야기를 꺼냅니다그러면서 여자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이 상대를 완전히 사랑하는 실수가 가능할까?’ 사랑은 이성으로는 설명이 안되니까요. 이에 그녀는 지니가 거짓으로 꾸민 이야기가 아니라, 진실로 사람을 사랑했기에 소원을 들어줬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과 사랑의 관계를 맺자고 합니다. 같이 런던에 간 이들은 함께 살게 됩니다. 인간과 정령의 사랑이지요. 하지만 현실에서 지니는 점차 힘이 빠지고 먼지가 되어갑니다. 지금 현 시대 사람들은 신화나 이야기를 믿지 않기에 자신이 쓸모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그녀도 지니를 잡아두는 것이 자신의 욕심이었음을 깨닫고 떠나라고 말하고요. 가끔씩 둘은 재회하면서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물어보게 됐습니다. ‘우린 과연 주님을 제대로 사랑하긴 한걸까?’ 라고요.

 현실의 우리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들고, 만나고 싶은 것만 보면서, 다른 사람이나 주변의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어져 갑니다. 사람들이 소원을 빌지도 않고, 기도를 잘하지 않는 이유도 그럴지 모릅니다. 세상만사가 뻔하다고 여기거나, 나 자신이 중요하고, 눈에 보이는 현실에 치중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손안에서 보여주는 핸드폰의 현실, 당장 계좌에 찍혀있는 통장 잔고가 중요하고요. 그 외의 것인,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은 관심을 끄고 사는 것이 편하다고 느낄런지 모릅니다. 그런 세계는 당장 머리부터가 지끈거리니까요. 마치 지니가 현실 세계에서는 더 이상 필요 없는 존재로 여겨졌듯이, 어쩌면 하느님이란 분도 지금 세계에서는 불필요한 분으로 여길런 지 모릅니다. 눈에 보이는 것도 처리하기가 힘들고 벅찬데, 안 보이는 분을 모시면서 나에게 주신 주님의 사명이 부담스럽게 여겨질 수 있으니까요. 저는 여러분들을 일부러 교화시킬 생각은 없습니다. 모든 게 그렇듯 마음 속으로부터 필요함과 절실함을 가져야 그 변화라는 것도 스스로의 가치가 발견되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이 런 질문은 드릴 필요가 있겠습니다. ‘우린 지금 진짜를 만나고 있습니까?’

나만의 것으로 가득차고 점철된 것은 진짜가 아닌, 내가 싸질러놓은 배설물일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나의 욕망으로 빚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항상 옳고 좋은 것만 선택하면서 살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감정에 휩싸이고 치우치면, 감성적으로 이기적으로 흐르기 쉽고요. 결국 오판을 하게 되고, 나도 모르게 오염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그러기에 우린 진짜를 붙잡아야만 그나마 내 안에 차 있는 것의 정체를 파악하면서 속지 않고 살 수 있는데요.

 오늘 1독서에 나옵니다. 너는 나의 종이다.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그분께 생명을 받아 삶을 살아가는 내가 그나마 질서있는 삶을 살려면 나의 근본을 붙잡아야 하겠지요. 세례자 요한이 나도 저 분을 알지 못하였다 고 말한 솔직한 고백이 그리 창피하게 들리지만은 않은 것은, 우리도 자기 나름대로 주님을 바라보려 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체험을 통해 주님을 발견합니다. 그러면서 기쁘게 자신의 퇴장선언을 알립니다. 이젠 자신의 시간은 끝났고 예수님이 드높여져야 하는 타이밍니까요. 이런 모습은 2독서처럼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라면서 자신만을 위함이 아닌, 남을 위해 빌어주는 삶으로 옮아갈 때 이 삶이 주는 교훈이 뭔지를 알아가는데요.

 과연 주님이란 분이 나하고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현실을 있게 해주시고,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드신 분께, 우린 무엇을 해드리며 관계를 맺고 있나요? 여러분도 참다운 사랑을 하고 싶지 않습니까? 그게 비록 실수라 할지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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