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6주일. 집회 15,15-20; 1고린 2,6-10; 마태 5,17-37
모든 것이 불안하고 불확실한 시대를 살면서 필요한 것은 무얼까요? 이런 문제에 대해 우리만 이런 걸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먼 옛날 사람들도 그랬고요. 미래 세대들도 그러할 것입니다. 여기서 잠시 우리가 잘 아는 솔로몬 왕의 입장을 보겠습니다. 솔로몬이 아버지 다윗을 이어 임금이 될 무렵, 그는 걱정이 많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단지 자기 가정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한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 막중한 지경에 놓여있으니까요.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그렇지요. 빌어야지요. 기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 자신에게서 답이 나올 수 없는 범위니까요. 그는 하느님께 빕니다. “당신께서는 당신 종을 제 아버지 다윗을 이어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만, 저는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아서 백성을 이끄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당신 종은 당신께서 뽑으신 백성, 그 수가 너무 많아 셀 수도 헤아릴 수도 없는 당신 백성 가운데에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어느 누가 이렇게 큰 당신 백성을 통치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네가 자신을 위해 장수를 청하지도 않고, 자신을 위해 부를 청하지도 않고, 네 원수들의 목숨을 청하지도 않고, 그 대신 이처럼 옳은 것을 가려내는 분별력을 청하였으니, 자, 내가 네 말대로 해 주겠다. 이제 너에게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준다. 너 같은 사람은 네 앞에도 없었고, 너 같은 사람은 네 뒤에도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다. 또한 나는 네가 청하지 않은 것, 곧 부와 명예도 너에게 준다. 네 일생 동안 임금들 가운데 너 같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걸었듯이 내 길을 걸으며, 내 규정과 내 계명을 지키면 네 수명도 늘려 주겠다.” 열왕기 상권 5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부유함과 건강을 청한 것이 아니라, 다스려야 하는 백성을 위해 지혜를 구했기에 다른 것도 받게 됩니다. 마치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구하라. 그러면 나머지 것은 곁들여 받을 것이다” 라는 말씀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우리 성당 머릿돌에는 “깨어 있어라” 는 구절이 새겨져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 24장이지요. 그 깨어있음이 가능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제일 기초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구분입니다. 즉,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하고 싶다고 다 하면 안되지요. 그리고 하지 않고 싶다고 안 해서도 안됩니다. 즉 어릴 때와 달리 어른이 되면서 깨닫습니다. 자기 맘대로 하려들다가 오히려 욕만 먹는 일들이 생기지요.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그에 합당한 책임과 자세를 보여줘야 하지만, 오히려 평범한 사람보다 못한 경우가 왜 발생할까요?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이런 질문이 던져집니다. ‘고학력자는 늘어만 가는데, 실제로 그들에게서 왜 깊은 지성을 느낄 수는 없을까?’ 하는 물음입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정보는 넘쳐흐르고, 그 양이 너무 많아서인지 찾을 수 있는 현상은 이른바 ‘결정장애자’ 가 양산됩니다. 뭘 먹어야 할지, 어떤 옷을 입어야 할 지 등등도 정하기 힘들어합니다. 여기에 메이지 대학 사이토 타카시 교수는 이런 말을 합니다. ‘지식이 있어도 적절히 판단하고 선택하지 못하면, 지성이 결여 되었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정보가 넘쳐나는 현재, 우리는 늘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방향에 대해 질문을 받습니다. 여기에 잘못 선택하면 자신의 단기이익만 쫓는 결과를 낳고 맙니다.’ ‘그러면 지성을 어떻게 하면 키울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보지요. 1단계는요. 새로운 책을 읽고, 신문을 읽고, 고전을 번갈아 읽는 것입니다. 현재 나오는 새로운 책은 이슈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문은 일상에 대한 생각을 조리있게 서술하고요. 고전책은 그동안의 인간사를 꿰뚫고 있습니다. 물론 언론이라고 다 올바른 견해를 펴지 않고 곡해하지만 그럼에도 추세를 살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고전책이란 성경과 영성 서적이지요. 2단계는 지성의 본질은 지식이 아닌, 지혜에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식은 책으로 배울 수 있지만, 지혜는 경험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지혜를 얻으려면 ‘답 없는 물음’ 을 계속 던져야 합니다. 쉽게 결론 내리지 말고 계속 질문해야 합니다. 사실 사람은, 얼른 결론을 내리고 싶어합니다. 그런 과정이 힘들고 지루하고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그 과정을 가벼이 여기면 섣부른 결과를 낳기 때문에 그야말로 숙고(熟考)하는 자세가 필요한데요.
진리는 단순합니다. “예 할 것과 아니오 할 것” 은 확실하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내가 여기에 동참하느냐?’ 인데요. 지혜는 가까운 데 있습니다. 계속되는 질문과 침묵이 담긴 기도 속에서 해답을 찾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