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6주간 월요일

2023. 2. 14. 오후 12:4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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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6주간 월요일. 창세 4,1-25; 마르 8,11-13

 ‘내가 지금 하느님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우린 늘 확인하고 싶습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날 사랑하는지, 통장에는 잔고가 잘 남아있는 지 등등요. 하지만 자신을 넘어서는 차원인 믿음, 사랑, 용기, 희망 등은 측정 게이지가 보이지 않아 답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확인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오늘 바리사이는 예수님께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합니다. 11절 이전 장면은 사천명을 먹이신 기적이었습니다. 평범한 이들은 기적을 보았지만 바리사이들은 그저 소문만 들었으니 이런 요구를 한 셈입니다. 문득 이런 장면이 겹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계실 때, 밑에서 한 사람이 소리치지요. ‘거기서 내려오면 내가 믿을텐데..’ 과연 그 말대로 해줬다면 믿었을까요? 단순 이벤트 쇼라고 치부하고 금세 까먹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표징을 거절한 이유는 표징은 현실과 평범속에서 만나야 하는 것인데, 뭐 특별한 것으로만 여기는 이들에겐 메시지가 투영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요. 비범함은 현실에서 행할 때 참된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아차립니다.

 카인이 동생 아벨을 사랑했다면 질투에 시달려 동생을 죽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태도에서 그제서야 자신에게 동생이 있었음을 알아차립니다. 그전까지는 맏이, 장남이요, 유아독존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다 하느님의 거절로 자신에게 동생이 있었음을 알아차립니다. 동생이 양떼 중에서 맏배를 바치고, 굳기름을 정성껏 하느님께 바쳤음을 인정해줄 수 있었을텐데 그는 그러질 못합니다. 결국 비극을 맞이하지요.

 우리가 확인하고픈 표징은 현실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만드신 세상에서 그것을 우리가 발견하려고 삽니다. 하지만 그걸 바라볼 만한 관찰력과 인정할 수 있는 시각이 열려있는 지가 관건인데요. 눈을 크게 뜨고, 귀를 더 열고, 오감을 확장하며 주님이 주신 세상을 바라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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