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5주간 수요일. 창세 2,4-17; 마르 7,14-23
사람에겐 본능이 있습니다. 본능이 좋은 것만 있다면 다행이지만 여기에는 ‘악한 것으로 기울어지는 경향’ 도 포함됩니다. 마치 어릴 때 문방구에서 팔던 불량식품처럼 몸에는 좋지 않지만 맛은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악한 것이 주는 나름의 이점이 있기 때문이지요. 여기에 사람들은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왜 하느님은 사람에게 악한 것을 주었냐고?’ 요. 하지만 반대로 질문을 해보지요. ‘모든 것을 금하게만 하는 것이 사랑일까요?’ 우리가 아이들을 키울 때 그러했습니다. 심지어 우리들의 부모님들도 그랬습니다. ‘이건 안 좋아... 하지마.. 그러면 안돼..’ 어른이 경험해봤으니까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금기어를 말하지요. 이해합니다. 하지만 무조건 금기어를 통해 금지시키기보다 필요한 것이 무얼까요?
주님의 교육방식과 우리의 교육방식의 차이가 있습니다. 우린 앞서 거론한 것처럼 ‘금기어’를 통해 금지시키고 단절시키는데 매달리자만 당신은 선택권을 주시면서 그로인해 관계회복을 바라십니다. 인도의 신부님인 안소니 드멜로 신부님이란 분은 많은 우화를 발표합니다. 여기에 ‘매듭’ 이란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말하지요. ‘왜 하느님은 죄인과 더 가까우신 것처럼 보이나요?’ 이에 답합니다. ‘하느님은 각각의 많은 사람들과 끈으로 붙잡고 계신다. 여기에 사람들이 죄를 지으면서 붙잡고 있던 관계의 끈이 끊어진다. 하느님은 관계를 다시 맺고자 매듭을 묶으시고, 다시 인간은 죄를 짓고...이걸 반복하면서 주님과 사람은 가까워진다’ 고요.
물론 악한 것, 그것에 기울어지는 경향, 여기에 찬동하여 죄를 짓는 것은 좋은 것은 아닙니다. 나도 모르게 습성이 키워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무조건 ‘하지마라’ 라고 말하는 것보다 그것이 가진 ‘해악’을 깨달을 때, 비로소 나는 그것에서 자유롭게 되면서 선한 것을 택할텐데요. 여러분도 주님의 큰 범주의 사랑을 배워가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