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5주간 목요일. 창세 2,18-25; 마르 7,24-30
여러분은 기도하면서 어디까지 매달려보셨습니까? 얼마나 간절히 기도해보셨느냐?를 여쭙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버려야 할 것이 하나 있지요. 그건 자존심입니다. 누구는 그 자존심이 없으면 안된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자신을 드세울 그 무언가가 그것이지요. 하지만 내가 대하는 주님을, 내가 세우는 자존심으로 협상이 가능할 분일까요? 내가 떼를 쓰고 고집을 부린다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분이시기에, 오히려 겸손하게 굽혀야 하는데 그 사실을 잘 모르는 분들이 있지요. 기도의 주도권은 내가 아니구요. 기도한다고 꼭 들어줘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건 그저 내 바람이니까요. 그러기에 필요한 것은 굽히는 자세인데요.
오늘 자기 딸의 치유를 바라는 여자가 나옵니다. 유대인도 아닌 이방인인 시리아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그 시대상으로는 바람을 들어줘야 할 우선순위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밀쳐지요. 그리고 주님도 한 번 밀어봅니다. 그 여인의 간절함이 어떤 지도 보고 싶으시니까요. 여기에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대단한 자기 겸손이지요. ‘이제 당신밖에 해답은 없습니다’ 라는 자세입니다. 도움을 바라는 이가 어디 이 여인뿐일까요? 독서에도 아담이 생물 하나하나를 부르며 그것이 이름이 되지만, 자신과 함께 할 협력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에 하느님은 은총을 베푸시지요. 그러자 아담이 기뻐합니다. 그러면서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살이구나” 그는 짐승을 부르면서 그들과 친구가 되며 함께 하는 사랑의 자세를 갖추었기에 주님이 협력자를 주시지요.
신앙인은 우리가 할 수 없는 범위, 쉽게 만날 수 없는 차원을 만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을 주님답게 모시고, 그분의 허락하심을 기뻐합니다. 살면서 우린 그런 기적과 감동을 만나고 싶어합니다.
오늘도 그런 시간이셨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