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1주간 화요일. 이사야 55,10-11; 마태 6,7-15
‘오늘의 성경구절은 주님의 기도입니다. 익숙하게 외우고 있지만 이 기도문은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것으로써 굉장히 중요하고 의미가 깊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기도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또한 하느님의 성품과 우리가 가진 필요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할 때 길고 어려운 말로 하지 말고 간단하고 솔직한 마음으로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십니다. 그리고 이 기도문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우리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더 가까워질수록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더욱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이 강론 어떻게 들리셨습니까? 이건 제가 쓴 것이 아닙니다. 대화용 인공지능AI 챗gpt가 쓴 것을 대신 읽어드렸습니다. 한국어로 쓴 거죠. 어떠신가요?
우연히 누가 보내 준 이것을 읽고 다시 침묵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법인데?..’ 라는 첫느낌입니다. 열심한 어떤 신자가 썼거나 혹은 성직자나 수도자가 했다고 해도 그럴 듯하게 들립니다. 여기서 전문(全文)을 다 읽어드리진 않았지만 천천히 들여다보니 뭔가 보입니다. 그건 바로 일반론에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깊이는 없는 평이함입니다. 물론 챗gpt 가 초기모델이기에 그럴 수 있지만요. 한편으로 이런 단계에서만 머물려는 많은 교우들의 현재 모습도 보입니다. ‘주님의 기도’를 그저 내가 아는 일반적인 차원에서만 머물려는 자세지요. 우리의 이런 귀차니즘이 결국 하느님과 더 가까워지지 못하고 인공지능에게 맡겨버리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면, 이 신앙이 내게 무슨 역할을 해줄까요? 과연 내가 하느님을 찾을 이유가 있을까요? gpt란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사전 훈련된 생성 변환기)’ 결국 이미 사전에 갖고 있는 정보를 재조합하여 다음에 이어질 단어로 문장을 구성합니다. 그렇다면 아직까지는 아는 정보 이상의 것은 풀어내지 못합니다. 그러니 깊이가 없었던 것이죠.
저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봅니다. 독서에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는 말씀을 보며 주님의 기도와 이어짐을 봅니다. ‘당신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 지 아신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의 사랑을 헤아려본다. 비와 눈을 내려주시어 곡식을 자라게 하시면서도 당신은 사람처럼 받을 것을 생각하지 않으신다. 그저 우리가 잘 되길 바라신다. 그렇다면 나도 내어주는 사랑을 해야하지 않을까? 그러면서 그분이 하려는 의도에 동참한다면 나도 주면서 행복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지식의 차원이 아닌, 영성으로 깊어지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