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2주일.

2023. 3. 8. 오전 12: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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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2주일. 창세 12,1-4; 2디모 1,8-10; 마태 17,1-9

수수께끼라는 제목의 이야기입니다. 계란을 파는 사장님이 가게에 온 손님에게 말합니다. ‘내 손에 무엇이 들었는지 맞춰보세요.’ 손님이 말합니다. ‘내가 맞출 수 있게 힌트를 주세요그러자 주인은 설명합니다. ‘몇 가지 실마리를 드리지요. 모양은 달걀모양이고, 크기는 달걀 크기만 합니다. 달걀처럼 생겼고 달걀맛이 나며, 달걀 냄새가 납니다. 안에 든 것은 노란색과 흰색으로 되었는데 삶기 전에는 액체이고, 삶으면 굳어집니다. 게다가 이건 암탉이 낳은 겁니다.’ 이에 손님이 답합니다. ‘~ 알겠습니다. 요새 새로 나온 서양과자이지요?’ 이게 무슨 뜻일까요?

 앞에서 소개한 이야기는 달걀에 대한 설명을 하지만 결국 자기 식대로 알아들으려는 사람의 이야기였습니다. 자기 생각에 갇혀서 뻔한 것을 놓치지요. 이 사람이 왜 그랬을까요? 세상을 행복하게 사는 방법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착각하면 됩니다. 그것도 내 방식으로요. 마치 자기 생각을 벽에 둘러쌓고 믿고 싶은 데로만 믿으며 살면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헌데 이런 방식을 원하십니까? 하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듣고싶은 뉴스만 보고 듣고요. 사귀고 싶은 사람만 만나고요. 믿고싶은 데로만 믿으려 듭니다. 진리나 사실 따위는 상관없이요. 누가 조작을 하건, 가짜정보라는 것을 살피지도 않으면서요. 이런 것 원하십니까? 전문가가 와서 설명해주어도 심지어 복음에 예수님이 직접 제자들에게 설명해주시지만 사람들은 믿으려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생각대로 사는 법을 택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러면 행복할까요?

있었던 실화입니다. 20세기 유명한 신학자가 말년 무렵, 요양원에 있던 중, 요양보호사에게 묻습니다. ‘왜 많은 노인들이 종교적인 의심이 드는 것을 글로 쓰지 않지?’ 그는 나이가 들었기에 그런 질문을 던졌던 것입니다. 자신이 살던 청춘의 젊은 시절이 영원할 줄 알았지만 어느새 늙어가며 깨닫습니다. ‘내가 불멸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었구나. 나는 죽음이 늘 내곁에 있었음을 잊어버리고 살았었지만 이는 착각이었다.’ 는 사실을요. 처음부터 사람들이 신에 대해 하느님에 대해 신경쓰지 않고 삽니다. 왜냐하면 당장 먹고사는 데 큰 문제가 아니라 여기고요. 자기 현실에 그저 만족하면서 거기에 안주하면서 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이게 더 이상 남의 문제가 아님을 자각합니다. 그동안 무사해왔던 자신의 착각을 다시금 바라보는데요. 그러면 우린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하나의 종교를 갖는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거는 문제입니다. 무엇을 믿느냐? 는 내가 결국 어떤 사람이냐?를 말해주고요. 이를 대답할 때, 내가 지금 이 성당에 왜 와 있는 지도 알기 때문입니다. 질문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고요. 그런 몸부림이 하느님과 더 가깝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왜 사는가?’ 하는 질문은 인간의 가장 근본에 깔린 문제인데요. 앞서 저는 행복하게 사는 비법을 착각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게 정확한 답변은 아니지요. 이제 제대로 된 답을 찾겠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들으신 크게 이렇게 요약됩니다. 창세기의 아브라함은 떠나라 는 통보로 평소 가진 재산을 놓고 안주하던 삶에서 벗어나 주님이 주신 땅으로 향해 갈 때 지금 당장엔 잘 모를 수 있어도 진정한 행복을 만나게 됨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거룩한 변모 사건을 통하여 우리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을 약속해주시지요. 죽음이 우리를 가두지 못하는 빛나는 삶인데요. 헌데 베드로는 그저 초막 셋을 지어놓고 편히 지내자고 하니, 당신의 의도를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독서는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목적과 은총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하게 살게 하시려 부르시고 복음으로 불멸을 환히 보여주셨습니다.” 라며 내 생각에 갇힌 삶으로 끝맺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이 주시는 초대에 응할 때 그로인해 얻는 행복을 말씀하시는데요. 내가 애써 이뤄낸 행복이 더 클까요? 아니면 같이 참여하면서 얻은 행복이 더 클까요? 우린 더 크고 빛나는 것을 만나려 여기 왔는데요. 우린 자신이 만든 감옥에 갇히지 않으려고 하느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따릅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라는 말씀에 입각해서 그분 마음에 들 때 내 인생이 펴기 때문입니다. 내가 알던 차원에서 벗어나 더 큰 것을 선사하시는 초대의 부르심의 가치를 알고 믿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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