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3주간 목요일. 예레 7,23-28; 루카 11,14-23
뭔가를 만나도 꼭 삐딱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게 비평가의 논리라면 그럴 수 있습니다. 뭔가를 잘해보려는 시각에서 비롯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일부러 어긋나게 말하고 행동하면서, 남을 부추키는 상태는 그리 정상적이지 않는데요. 하지만 이런 사람이 우리 주변에 꽤 있지요. 어찌해야 할까요?
예전 서기 300년 경의 사막의 교부였던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는 ‘인간은 가지고 있는 실제적 육체 탓에 자기 상태를 더 좋게도, 더 나쁘게도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사람은 천사로 바뀔 수도 있고, 악령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겁니다. 가지고 있는 육체는 원래 하느님께 서 덕을 실천하라고 부여해주신 도구입니다. 우리의 손으로 남을 도울 수도 있고요. 반대로 남의 것을 훔치거나 때릴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지닌 ‘자유의지’ 로 인해 선하거나 오히려 악을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인데요.
오늘 말씀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나에게 순종하거나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목을 뻣뻣이 세우고 자기네 조상들보다 더 고약하게 굴었다.”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은 모습이 나오고요. 복음은 예수님이 기적을 베푸십니다. 이는 하느님의 나라가 지금부터 시작되었음을 보여주시지만 사람들은 이를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하는 행동이라 말한다. 벙어리였던 이가 말을 하게 되었는데 오히려 마귀의 짓이라고 말합니다. 이제 여기서 무엇이 보이십니까?
우리가 선을 행하고 악을 저항하기 위해 부족한 것은 없습니다. 겁먹지 않는다면 이 싸움에서 일부러 질 수는 없지요. 하지만 교만한 태도로 하느님의 힘을 의심하거나 업신여기거나 남에게 모략을 품고 전한다면 이는 당신의 섭리에 반(反)하는 행동이 됩니다. 결국 스스로 하느님을 등지고 버리는 사태가 되지요. 우리 중에서 굳이 이런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뭘까요? 옛말에 있지요.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 이처럼 악한 것에 물들어 갈 때, 점점 쎈 수위를 찾는 쾌락자나 중독자들처럼 오염되어 가고, 그것의 병폐를 깨닫지 못합니다.
나는 지금 좋은 것을 좋은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까? 아님 뒤틀려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