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4주간 수요일
예전 어릴 때는 서로가 터놓고 지냈습니다. 손해봐도 친구니까.. 하면서 넘겼습니다. 하지만 이젠 시간이 지나니 좀 달라집니다. 너는 너, 나는 나. 이렇게 선을 긋고 만나게 되면서 불필요하면 연락조차 안하게 됩니다. 필요에 따른 관계가 되고요. 이득의 관계가 되어갑니다. 과연 어떤 사랑을 하고 있나요?
주님은 오늘 이런 말씀을 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어 당신께서 하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여주신다” 게다가 독서에도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고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당신은 큰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필요할 때만, 이득이 있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늘 기억하고, 잊지 않고, 그래서 관계를 끊지않고 이어가는 분임을 알려주십니다. 헌데 우린 이제는 사람들끼리 필요로 만나는 관계가 되었고, 결국 어른같지 않는 어른이 되어버렸기에 이런 큰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데요. 즉 이런 사랑을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전 어느 교구에 있었던 안타까운 실화가 생각납니다. 연세도 저보다 많고 소탈한 어떤 신부님인데요. 성당에서 자매님과 대화 도중, 언성이 높아졌답니다. 그 자매님이 갑자기 화를 내니까, 갑작스런 그 모습이 안타까웠던 신부님은 차분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자매님을 사랑해요..’ 그랬더니 그 자매는 이 신부님을 성희롱으로 고소를 했더랍니다. 물론 그 신부님이 단순하고 순진하게 접근하였기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요. 화가 나 있는 상태의 자매님도 ‘사랑’ 이란 말에 발끈하면서 자기를 모욕한다고 여겼기 때문인데요. 즉 그런 사랑을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큰 사랑, 포용의 사랑을요.. 그래서 사랑은 쉽지 않은 겁니다. 내 의도를 상대방이 다 알아들을 것이란 착각을 하면, 오히려 욕을 먹지요. 주님의 이런 큰 사랑을 모두가 다 좋아라 하지 않지요. 그래서 지금도 십자가의 사랑을 잘 이하하지 못한 이유도 그것입니다. 문제는 그 사랑을 내가 다 헤아릴 수 있을까요? 그걸 살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