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4주간 목요일

2023. 3. 23. 오후 9:4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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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4주간 목요일

 오늘 말씀은 좀 냉정합니다. 모세가 중재하며 나서지만 당신은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날 말리지 마라. 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뜨려 그들을 삼켜버리게 하겠다.” 하시고요. 복음은 너희는 날 받아들이지 않는다.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라며 단언하십니다. 이것은 단순하게 섭섭하게 볼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이런 이들이 왜 늘어가고 있는지, 신이 없다고 여기고 주님을 떠나가는 나름의 이유를 볼 때 나의 신앙을 확고히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고요. 주변 사람들도 설득시킬 수 있는데요. 몇가지를 보면요.

 1. 자기 나름의 신을 이미 만들었다는 겁니다. ‘하느님이라면 이 정도는 해줘야지라고 여깁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말합니다. ‘내가 이해할 수 있다면 그건 하느님이 아니다라고요. 나보다 월등하신 분을 내 기준으로 까내린 것은 아닐까요. 내가 그리 똑똑하지만도 않은데 말입니다. 2. 신을 없앨 때 그 빈자리를 노립니다. 내가 높아지고 싶다는 교만이 있지요. 국회의원들 모두가 대통령이 되고 싶지만 내가 정말 그런 그릇이 되는 지 잘 보지 못합니다.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다보면 정말 실력이 있는지 착각하는 경우처럼 말이죠. 3. 무관심에 빠져 갈등과 고민을 회피합니다. 여기는 고독속에서 음성을 들으며 답을 찾아가는 곳입니다. 헌데 당장 기다리는 것이 힘들기에 어려워하는데요. 4. 인간의 능력으로 신을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에 빠지는 경우입니다. 물론 여기에도 방법은 있습니다. 파스칼 팡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는 현재 하느님이 존재하는 지 모른다여기에 2가지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신이 존재한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을 내기라고 가정한다면 경우 나는 더 이상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습니다. 원래 안 계시다고 여기니까요. 의 경우, 하느님이 계시다고 내기를 걸었는데 하느님이 없다면 난 잃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이 계시다면 난 보상을 받을 겁니다. ‘영원한 생명을요. 고로 믿는 편이 낫다는 것이지요. 하느님은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관계를 가질 뿐이지요. 가족이나 식구, 친구, 애인도 가질 수는 없지요. 5. 하느님이 내게 어떤 의미를 주는 지 알고있나?입니다. 이것이 버팀목이 되어줄 것입니다. 음악을 들을 때 무엇이 들립니까? 단지 음악입니까? 꽃을 볼 때 뭐가 보입니까? 단지 꽃뿐입니까? 아름다움을 통해 생기과 깊이와 사랑을 느낍니다. 이것은 단지 감각을 넘어선 충만함입니다

 나는 시간이 지나며 변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불변하고 신실한 분이십니다. 결국 누가 약속을 지키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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