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6주간 금요일
어떤 스승이 찾아온 사람에게 묻습니다. ‘찾는 게 무엇이요?’ ‘평화입니다’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이에게 평화는 그저 번민으로 다가올 뿐이지요’ 이런 스승에게 어떤 수도회 단체가 찾아와 축복을 청합니다. 이에 스승은 익살맞게 씽긋하며 말합니다. ‘하느님의 평화가 항상 여러분을 흔들어놓기를...’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이건 악담이 아닙니다. 오히려 격려입니다. 평화와 근심은 같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이 그러합니다. “너희도 지금은 근심에 싸여있다” 우리의 기도가 늘 그래왔습니다. 걱정꺼리를 없애달라고요. 내뜻대로 되게 해달라고요. 하지만 그런 기도를 되풀이할수록 걱정과 근심은 커져가고 늘 불안함에 시달렸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요? 내 맘에 지금 무엇이 깃들어있는지부터 살펴봐야겠습니다. 과연 지금의 불안함은 무엇을 못미더워했기에 그런 것일까요? 모든 기준을 내 위주로 돌아가게 여기면 하느님도, 주위 사람도, 상황도 믿을 수 없는 것 투성이입니다. 그것들을 어찌 봐줄 수 있겠습니까? 꽃이 흔들리면서 피는 걸 안다면 그 바람에 날 맡기고, 지금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으며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음을 알고, 다른 문이 열린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오늘 바오로는 유다인들에 의해 재판정으로 끌려갑니다. 일단 상황은 불리합니다. 헌데 갈리오라는 총독은 유대인들이 따르는 율법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자신은 다스리는 행정적인 일만 다하면 그뿐’ 이라고 여깁니다. 이로인해 바오로가 풀려나자, 화가 난 유다인들은 분풀이 하고자 회당장 한 사람을 매질케하면서 상황이 종료됩니다. 즉 유다인들은 갈리오 총독이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 몰랐던 것이지요. 우리도 그렇습니다. 불안함에 현실도 잘 모르면서 그냥 두려워만 합니다. 그러다가 나의 예상과 다르게 일이 잘 풀리기도 합니다.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근심하겠지만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잘 바라보면서 대처해가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