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승천 대축일

2023. 5. 20. 오후 2:4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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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승천 대축일

이번 주부터 4주 한 달간 대축일만 있는 날입니다. 오늘 주님승천대축일, 28일 성령강림대축일, 64일 삼위일체대축일 611일 성체성혈대축일까지 잔치잔치 열린 날인데요. 교회는 이렇듯 큰 날로 여기는데, 문제는 우리가 이날을 진짜 잔치요, 축제인 큰 날이라고 여기십니까? 우리가 이 점을 봐야 하는데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뭔가를 보여주셨고 가르쳐주셨다는 사실은 다 압니다. 헌데 문제는, 이것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저는 오늘 3가지 말씀을 드리면서 당신의 바람, 즉 주님의 뜻과 우리의 행동, 즉 우리의 실천이 어떻게 맞아야 헷갈리지 않을까?를 보려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교우들이 교회 있을 때는 그럴듯한 모범적인 신자인데, 교회를 나가면, 집이나 직장, 학교 등에서는 비신자보다 못한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태가 이러하면 제일 힘든 사람은 당사자인 본인 자신이지요. 왜냐하면 배운 것과 실제가 연결이 안되니까요. 오히려 비신자인 편이 오히려 더 나을 수 있습니다. 우린 참다운 인간이 되려고 여기 모였습니다. 세상이 혼란스럽다보니 사람 같지 않은, 괴물같은 사람을 많이 봅니다. 여기에 우리도 예외이진 않습니다. 나도 모르게 좋지 않은 선택을 하곤 하니까요. 그럼 어찌해야 할까요?

 오늘 복음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독서에도 나오지요.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랍니다. 헌데 이런 문제에 봉착합니다.

 첫째, 하느님을 믿는 신자 수가 많아지면 교회 현실이 더 나아질까요? 이 질문이 이상하지만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서기 300년 경, 열심했던 교우 중 일부가 사막에서 은수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알 듯이 313년에 교회가 공식적으로 공인되지만 그전부터 분위기는 교회에 긍정적으로 변해갔습니다. 헌데 이들은 그 현실을 떠나서 사막으로 갔습니다. 왜일까요? 그들은 사람들의 한계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많다고, 시스템이 견고하다고, 정의와 사랑이 넘칩니까? 꼭 그렇진 않습니다. 우리가 그랬습니다. 여러 문제로 싸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갈등으로 서로를 보지 않으려 들고, 대화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 뭔가를 하려 했던 시도가, 실은 서로에게 상처를 안겨주었고, 그로인해 마음을 닫게 된 일들 말이지요. 예전이라고 그런 일이 없었을까요? 그들도 신자수가 많아지면 벌어질 문제를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교회가 이런 결정에 손을 들어주기보다는 오히려 지금의 방식, 안 믿는 이들을 찾아가라는 선택을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하느님을 알리는 편이, 조심만 하려는 결정보다 비신자들에게 기회를 주니까요. 그리고 나도 그들의 변화로 달라지곤 합니다. 둘째로, 여긴 인헌동 성당이라고 불립니다. 그런데 여긴 국가가 세운 곳이 아닙니다. 그저 종교부지라는 곳에 건물을 세울 수 있도록 허락만 해준 것이 전부입니다. 돈은 여러분이 냈지요. 게다가 대한민국은 천주교 국가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왜 동네 이름을 붙여 성당을 세울까요? 인헌동, 행운동, 명동.... 이렇게요. 여기엔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교회법상 교회는, 속지주의를 원칙으로 합니다. 그래서 교우들이 편하도록 살고있는 가까운 성당에서 성사생활을 하게 하고요. 신자뿐만 아니라 해당교회에 속한 그 동네의 비신자들을 끌어안고 선교하라는 사명을 받았기에 이런 방식을 취합니다. 즉 가까운 자기 동네에서부터 복음화를 시도하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죠. 셋째로, 과연 나는 복음화된 시각으로 세상을 살고 있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판단 기준은 비신자의 입장에서 시작합니까? 아니면 주님을 따르는 사람의 입장에서 판단을 내립니까? 제가 이 생활을 하다보니 보이는 게 있습니다. 좋게 말하면 조심스럽고요. 나쁘게 말하면 내 것을 잃어버립니다. 즉 내가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을 알리기 꺼립니다. 심지어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성호경을 긋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주님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남의 눈이 더 두렵습니까?

 당신이 나에게 주신 생명과 사랑과 사명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사는 지, 잘 보셨으면 합니다. 내가 받은 것을 잘 돌려드려야겠지요. 나는 이미 주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잖습니까? 그 사랑을 남들에게 잘 베풀 때 당신이 원하시는 삶이 되어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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