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7주간 화요일
예전부터 교회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가지고 있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사는 거라고요. 바람이 부는 이유는, 더운 지역을 시원하게 만들기 위해 지구가 자구책을 펴며 한쪽이 뜨거워지지 않으려 하는 거구요. 동식물이 자손을 낳고 키우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럼 우리 사람은 가진 목적이 뭘까요? 예전을 잠시 돌이켜봅니다. 일단 하고 싶은 것을 하려 들지만 지나고 보면 꼭 그것이 필요해서였기보다 유행처럼, 그 시대가 그런 것을 하고 있으니 나도 따라했던 것이 많구요. 내가 하고 싶어서 했지만, 역시나 나하고는 맞지 않았던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사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가톨릭 대학교의 교양 과정 중에는 ‘인간학’ 에 대해 가르칩니다. 신학교가 아닌, 가톨릭 대학교는 비신자도 들어가는 곳이지요. 여기서는 사람이라면 원래 가지고 있는 인간성을 다시 찾고 보존하여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우리 신앙인은 인간에 대해 어떻게 볼까요? 교회는 인간은 자신이 하느님 사랑 안에 감싸져 있음을 알고, 모든 역사는 하느님 계획의 일부로 동참을 해야 한다면서,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에 대해 참된 대답을 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현실은 내가 선택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지요. 지금 모인 사람들도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면 나는 여기서 헤쳐나가야 하는데요.
오늘 독서와 복음에는 예수님과 바오로 모두 자신의 길을 향해 떠납니다. 모두 순교하러 가는 것임을 압니다. 남들에게 복음을 전하겠지만 결국 결론은 자신이 죽을 것을 압니다. 알면서도 그 길을 갑니다. 이제 우리의 차례입니다. 나의 인생에서 나의 길을 잘 찾아가야 하는데요. 여기서 우린 교회가 가르쳐온 순명에 대해 다시 바라봅니다. ‘나는 과연 어디까지 내려놓을 수 있을까?’ 하고요. 하느님의 길을 따르고 당신께 봉헌된 삶을 산다면서 실제로는 어디까지 그럴 수 있을까? 묻게 됩니다. 물론 어렵지요. 상황이 당장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어떤 때는 하기 싫지만 해야 할 것이 있지요. 하기 힘들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고요. 남들은 조건과 상황이 안되서 못하지만 그나마 나는 능력이 되니까 내가 할 수 밖에 없는 때도 생깁니다. 나는 이 현실을 어찌 받아들이나요? 나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