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9주간 수요일
자칫 우린 착각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세상이 어려울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그 착각은 ‘내가 사는 이 현실에서 모든 만족을 얻고 이뤄야 한다’ 는 현세적 측면에서의 행복이 전부라 여기는 문제입니다. 이미 우리 사이에서도 이런 의식이 팽배해 있습니다. ‘죽으면 다 끝나는 거야. 지금 행복해야지, 나중이 어딨어?’ 그래서 더 악착같이 여기서 모든 것을 얻어내려 애를 씁니다.
복음의 사두가이는 귀족층입니다. 당연히 어려울 것이 없고 지금 사는 현실에 만족하며 사는 이들입니다. 그들에게 ‘영원함’ 은 오히려 구차스럽습니다. 지금 재밌는데 희망을 가질 이유가 없는 이들입니다. 이미 누리고 있으니까요. 반면 독서의 사라는 힘듭니다. 지금 사는 현실이 너무 비참하고 어려웠기에 목을 메고 모든 걸 끝내고픈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주님께 기도하는 것이 낫겠다” 여겨 기도하면서 천사 라파엘과 만나는 장이 열립니다.
우리 삶의 대다수는 어렵습니다. 이걸 누가 해결할 수 있을까요? 예전 경제 이론 중에 ‘낙수이론’ 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부자가 부유해지면 나머지 가난한 이들에게 부유함이 흘러 들어간다는 이론입니다. 하지만 그 이론은 결론적으로 틀린 이론이 되었습니다. 그건 단지 이론일 뿐, ‘사람의 욕심’ 이 어떤 지는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점점 자기 것만 챙기고, 가진 자들이 내야 할 세금을 내지 않으려 숨기는데 어디 부유함이 흐르겠습니까? 예수님이 오신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현실 속에서 모두가 서로 나누며 행복하게 살 수 있지만 사람들의 욕심이 그런 기회를 박탈시켰고 결국 사람들은 더 현실적인 것에 매달리게 됩니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죠. 이것을 타개하고 해결하시고자 주님께서 구원 사업을 펴신 건데요. 이제 그 구원의 손길을 누가 펴야 할까요? 살아있으면서 당신의 구원 사업이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