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0주간 수요일. 2고린 3,4-11; 마태5,17-19
가끔은 옳고 그름을 당장에 알 수 없는 경우들이 생깁니다. 예를 들면 기도를 가르치는 곳에서 이렇게 요구합니다. ‘원래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내려놓으라’ 고요. 처음에는 자존심도, 욕구도, 가지고 있던 본성도 꺾이는 것처럼 여겨지지요. 이걸 내려놓으면 내가 죽을 것 같고, 기분 나쁜 것을 아는데도 그런 요구를 해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본 뒤에야 비로소 내가 어디에 집착하고 있었는지 알게 됩니다. 결국 내가 진짜를 쫓고 있었는지, 거짓을 쫓고 있었는지 보이는데요.
예수님의 요구는 가끔 우릴 당혹하게 만듭니다. ‘내가 그동안 잘못 살아왔단 말인가?’ 라는 화가 불쑥 튀어나올 만한 마치 내 인생이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고 불쾌함이 밀려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안에는 이런 것이 숨겨져 있습니다. 나는 그저 무턱대고 조용히 따라갔을 뿐, 그것의 실체나 근원을 보지 못했던 것이 많았습니다. 복음처럼 율법은 지켰으되, 가르침은 따랐으되, 그 안에 담긴 참된 정신은 보지 못한 것을요. “문자는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 가르침이 적힌 것이 불편하지만 나를 비우고 해볼 때, 충만함이 젖어오는 것이 비로소 뭔지 알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대다수가 그 시대 흐름과 분위기에 따라 좌지우지 됩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나중에 알아차리곤 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느라 애썼지만, 나중에 은퇴해보니 알게 됩니다. 가족들은 나를 사랑하지 않았음을요. 비참하지요. 시대에 요구에 충실했지만, 한편으로 진짜를 보지 못했던 경험들이 있습니다. 일만 잘되면 가족을 살릴 수 있었다고 여겼지만, 실제로는 평소 일과 가족을 적절히 균형있게 챙겼어야 했는데 그때는 몰랐지요. 일만 하느라 건강을 챙기지 못하고, 결국 병이 든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주위의 현실은, 우리가 실상은 한편만 쫓고 있었다는 말인데요. “완성하러 오신 주님” 은 한편에만 메이지 않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린 한편에만, 내 생각에만 사로잡힌 경우가 많지요. 당신은 가까이도 멀리도 바라보십니다. 우리도 그런 주님의 시각을 배울 때 적어도 후회는 없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