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4주일. 즈카 9,9-10; 로마 8,9-13; 마태 11,25-30
잘 지내고 계십니까? 우리 상태를 바라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여러분 눈을 감아주시겠습니까? 살랑 불어오는 에어컨과 선풍기 바람을 마치 산에서 부는 바람처럼 여기며 따라오시면 됩니다. 아침 일찍 아무도 없는 관악산에 혼자 올라와 있다고 여기셔도 됩니다. 무엇이 보이시나요?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그냥 홀로 있습니다. 짐이라고 해봐야 등에 맨 배낭정도입니다. 그동안 가진 걱정, 고민 등을 내려놓으려 여기 온 겁니다. 어때요? 편안하십니까? 조금만 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20초정도)
이제 눈을 뜨시고요.. 여러분은 본인의 마음을 잘 아십니까? 이른바 영혼 관리를 하십니까? 그동안 우린 보여지는 것들에 치중해 왔습니다. 그러다보니 나에게 신경쓰기보다 남에게 신경을 쓰고요. 보여지는 실적과 수치에 더 관심을 썼습니다. 내가 삐딱해지고, 꼬이더라도 내가 할 것을 하느라, 알면서도 그렇게 끌려갔습니다. 여러분만의 책임과 잘못은 아니지요. 환경의 영향도 있었고요. 우리들의 욕망도 있었고요. 한편 용기가 없어 하지 못함도 한 몫 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예상과 다르게 흘렀고요. 점점 메말라 가는 듯한 느낌에 힘들었습니다. 이제 무엇이 필요할까요?
도덕경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천하에 물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없지만 굳세고 강한 것을 공략하는데 그보다 나은 것이 없다. 부드러움이 굳셈을 이기고, 약함이 강함을 이기는 것은 천하가 다 알지만, 능히 행하지는 못한다.’ 물은 성질상 졸졸 흐르는 시냇물처럼 약해 보이지만 가끔 홍수가 나면 위력적인 힘을 발휘합니다. 바위도 뚫고요. 산도 가르고 모든 것을 덮치기도 하지요. 하지만 평상시에는 잘 모릅니다. 약한 모습만 보이니까요. 우리가 배운 가르침도 그렇습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서 언급된 지혜롭다는 자, 슬기롭다는 자들은 세상의 기준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지혜는 상황이 바뀌거나 달라지면 쓸모없는 것이 되곤 합니다. 변하는 세상에 대처하지 못하니까요. 그때만 좋은 거니까요. 하지만 ‘철부지’라 언급된 단어는 2독서처럼 “육에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의 힘으로 주님의 뜻에 맞춰”가면서 자신을 조절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처음에는 어리석어 보일 수 있고요. 놀림감이 될 수도 있지만 그들을 꺾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심지가 굳고 단단하기 때문이지요. 예수님도 일부러 약한 아기로 세상에 오시어 평범한 듯 보였지만 비범하게 사셨습니다. 우리도 각자의 삶에서 잘 서야겠습니다. 상황이 달라질지라도 그것이 우릴 힘들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린 늘 배운 바를 꾸준히 해나갈 것이니까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