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4주간 수요일
많은 이들이 뭔가 받아낼 요량으로 살곤 합니다. 그리고 상대방도 그 사실을 모르는 바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것도 있습니다.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체 해준다는 것을요. 그 사람의 속을 뻔히 알지만 그로인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면서도 그렇게 해주는 이유는 뭘까요?
오늘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표면적으로는 제자를 뽑고, 예수님 일을 하려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제자들끼리의 알력과 다툼, 그리고 자리 욕심과 시기, 질투가 있고요, 결국 예수님을 배반할 것을 당신이 모르셨을까요? 다 알면서도 그리 하셨습니다. 왜일까요? 독서에 요셉은 막내 아들이었지만 형제들의 시기심으로 이집트로 팔려옵니다. 하느님의 도우심과 그 자신의 재능으로 파라오 바로 밑까지 오릅니다. 7년간의 풍년과 뒤이은 7년의 흉년으로 다른 나라에서 이집트로 식량을 구하러 오던 사람 중에 자기 형제들을 알아보면서 매몰차게 대합니다. 예전에 받았던 상처 때문일까요? 아니지요. 일부러 그랬습니다. 예전에 국어책에도 실린 폴 빌라드의 ‘이해의 선물’ 이란 짧은 소설이 있습니다. 어떤 아이가 늘 가던 사탕가게에 그날 따라 혼자 갑니다. 사탕을 잔뜩 고르고 주머니에 있던 버찌씨를 내지요. 어린 지라 돈 개념이 없던 거였지요. 그런데 주인 할아버지는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음.. 거슬러줘야겠구나’ 하면서 오히려 2센트를 내줍니다. 그 아이가 나중에 커서 관상용 열대어를 파는 가게를엽니다. 여기에 한 아이가 와서 30달러 어치 물고기를 고르고서 겨우 5센트만 냅니다. 여기에 주인공은 예전 생각을 떠올리며 2센트를 거슬러줍니다. 여기에 아내가 무어라 항의하자, 예전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럴 수 밖에 없었어’ 라고 말하자 아내도 이내 눈물을 흘리는 내용인데요. 왜 그랬을까요?
제자에 뽑혔다고 예전 버릇이 없어진 것도 아니구요. 식량을 나눠준다고 그 형제들이 다시 착해질 것도 아니고요. 우리도 세례를 받았지만 여전히 옛날 버릇을 못 고치는 모습을 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걸 허락하십니다. 다시금 기회를 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있나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리 해주고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