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6주간 목요일. 탈출 19,1-20; 마태 13,10-17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배운 것도 뭘 좀 알 때, 재미가 있는 법이지요. 그 분야에 대해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저 주입식 교육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린 주님에 대해 얼마나 알고계신지요? 가끔 강론을 할 때 재미없어 하시는 분을 봅니다. 누구는 하품도 하고요. 어떤 분은 용기있는 질문도 던집니다. ‘신학교에서는 강론을 재미없게 하라고 시키던가요?’ 그분이 원했던 답변은 뭘까요? 이 시간, 이 자리에서 하는 내용은 주님 이야기만 해야 하는 자리인데, 그분은 뭘 기대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자칫 사람을 갈라치기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왜 저 사람들에게는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예수님 제자에게는 하나하나 소상하게 알려주시는데 다른 이에게는 알 듯 모를 듯 말씀하니까요. 여기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이른바 ‘구경꾼 모드(mode)’와 ‘버리고 따른 이의 모드’입니다. 처음부터 시작한 ‘방식의 차이’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일단 버렸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가족도 버리고 집안을 나왔지요. 돈 벌 수 있는 기술도 내려놓았습니다. 헌데 몰려드는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덕을 보려는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뭘 좀 얻으려니, 병을 고치려니.. 예수님은 기적을 베푸려고 오신 분이 아니지요. 기적은 그분의 권능과 힘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시일 뿐입니다. 그 능력을 발휘하려고 오신 것은 아니지요. 도움을 원하다면 주시지만요.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만 보려고 듭니다. 그게 차이점이죠. 지금의 교회를 다니는 이들도 그렇습니다. 교회에서 덕을 보고 이용하려는 이들이 있지요. 인맥 넓히고, 장사하는데 도움 얻고 등등이죠. 이곳이 뭘 하는 곳인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아는 척을 하지요. 교회에 대해, 신앙에 대해서요. 남들 눈에는 그 차이가 보이는 데도 자신만 모르고 계속 하던대로 하는데요.
교회는 교회다워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잘 지켜낼 때, 주님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고요. 당장 이해되지 않았던 것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의도와 정체성을 알 때, 우린 헷갈리지 않는 삶을 삽니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