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2주일.

2023. 9. 2. 오후 2:38:07

글자

연중 22주일. 예레 20,7-9; 로마 12,1-2; 마태 16,21-27

 사람은 얼마나 대단한가요? 사람이 이룰 수 있는 업적은 어디까지일까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과학자가 영성가에게 현대 과학의 업적을 다룬 기록영화를 보여주고서는 뽐내며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막에 물을 댈 수 있고요. 나이아가라 폭포의 수력을 이용할 수 있고요. 먼 별의 구성과 원자의 구조를 탐색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연정복은 곧 완성될 겁니다.” 영성가는 감명을 받았지만 곧 수심에 사로잡히면서 집에 돌아와 이렇게 말을 꺼냅니다. “왜 자연을 정복해? 자연은 우리의 친구인데.. 그 모든 에너지를 단 하나의 인류의 적인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 쓰지는 않을까?..”’ 우리가 가진 원초적인 두려움은 뭘까요? . 죽음이지요. 모든 것이 끝난다는 뜻이니까요. 어르신들이 계신 요양원에 가보면 느낍니다. 말씀으로는 내가 죽어야지하시지만 실은 더 살고 싶다는 눈빛이 보입니다. 그렇지요. 누가 그렇게 끝내고 싶겠습니까? 하지만 영원할 수 있는 방법이 그러하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반박합니다. 고난을 받고 죽임을 받았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말씀에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라며 손사래를 치지요. . 누구나 자기만의 계획이 있습니다. 죽으면서 없어지고 망가지고 싶은 사람은 없지요. 여기서 이런 것을 보게 됩니다. 인간의 지혜와 하느님의 어리석음 중 어떤 것이 더 큰가? 라고요. 고린토11장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뭐가 어리석고 뭐가 지혜로울까요? 누가 묻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노력이 중요하다고요. 여기에 영성가는 이런 말을 합니다.

 ‘영성에서 중요한 것은 애쓰는 것이 아니라 내맡김입니다. 물에 빠졌는데 헤엄칠 줄 몰라 두려워서 빠져죽지 말아야지 빠져죽지 말아야지 하며 손발을 이러저리 내저으며 버둥거리다가 불안한 나머지 물을 더 마시게 되니, 필경 빠져죽고 말지요. 반면에 생각하고 애쓰려 들지 말고 바닥까지 내려가도록 내맡겨 두면 몸이 절로 떠올라 물 표면으로 돌아오지요. 이게 영성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내맡기시나요? 말로는 주님께 맡긴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당신은 그저 그렇다고만 하세요라는 답정너의 상태가 얼마나 많습니까? 뭘 주님께 묻습니까? 답을 이미 냈는데요. 하지만 그건 우리 스타일이 아니지요. 우리 눈에 보기에 하느님의 방법은 어리석게 보일 수 있습니다. 마치 잔머리와 큰머리의 차이처럼 보입니다. 잔재주를 부리는 사람은 원대한 계획하에 움직이는 사람을 이겨내지 못랍니다.여러분은 어떠신지요?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