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1주일

2023. 8. 26. 오후 2:5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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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1주일

 예전 막 신학교에 입학한 후, 영성면담 때 일입니다. 그래.. 학사님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 것 같나요?’ 저는 자신있게 하느님은 사랑이 많으시고요. 정의로우시며...’ 어쩌구 저쩌구를 늘어놓고 있었습니다. 한참 들으신 신부님은 이런 답변을 내놓으셨습니다. 음 이제는 남이 알려준 하느님 말고요. 본인이 느낀 하느님을 말씀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가 그동안 남에게 들은 하느님을 진짜 하느님으로 여겼었구나.. 모범답안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마저 주입식으로 들은 하느님을 진짜라고 붙잡고 있었구나라고요. 저는 다시금 오늘 강론을 준비하려 기도하면서 저를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는데요.

 예전 이런 가요가 있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시길래 이렇게 내 마음 깊은 거기에 찾아와.. 어느새 촛불 하나 이렇게 밝혀놓으셨나요?’ 송창식의 사랑이야의 첫부분입니다. 당신이 누구시길래 나는 나의 인생을 걸고 있었나 바라봅니다. 여러분께도 여쭙습니다. 나는 한 사람을 어디까지 바라보고 있었습니까? 가족, 직장사람, 친구 등 몇 십년을 봐왔지만 과연 어디까지 알고 계시나요? ‘다 안다여겼던 사람들이 의외성이 발견되어 놀라지 않으셨나요? ‘잘 모른다여겼는데 내 예상대로 하고 있지 않던가요?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 잘 알기 위해서 먼저 사람에 대해 알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처럼 복잡 다단해지고 개인화 되는 세상에서, 누군가를 안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요. 상담가들도 오랜 기간을 면담하며 한 사람에 대해 치유하기 위해 애를 쓰는데 우린 어떤 때는 너무 쉽게 바라보고 결정짓곤 합니다.

 여기 복음에서 묻습니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다 자기 방식대로 풍문으로 들은 것을 내놓습니다. 여기에 베드로는 자신이 말하긴 했지만 자신의 대답이 아닌, 성령의 부름에 이끌린 답변이 나옵니다. 이건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허락된 은총입니다. 그야말로 선물을 받은 겁니다. 우리도 가끔 텅 빈 곳에 앉아 주님을 음미해 봅니다. 하느님에 대해 아예 모르는 것은 아니었고요. 그렇다고 다 아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2독서에 나오지요. 누가 주님의 생각을 안 적이 있습니까? 그분의 조언자가 된 적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정녕 넓습니다.” 저도 모범답안을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러분이 하느님을 맛보고 음미하며 내가 느낀 하느님을 만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잠시 그런 시간을 갖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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