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0주간 금요일
고사성어에 일이관지(一以貫之)라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며 이 단어가 떠올랐는데요. ‘하나의 이치로서 모든 것을 꿰뚫는다’ 는 뜻에서 주님의 모습이 보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온 ‘첫째가는 계명’을 설명하기 전에 알아야 할 배경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버리셨다는 말씀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모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두가이는 부활을 믿지 않았는데요. 여기에 예수님이 일침을 가하십니다. 이에 부활을 인정하던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이 과연 어떤 분인지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앞서 예수님은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으로 살아있는 이들의 하느님” 이라 하셨습니다. 살아있는 이들의 하느님의 뜻은 비록 지금은 지상에선 목숨을 거두었어도 당신 안에서는 모두가 살아있음을 뜻하는 것이지요. 이에 많은 율법 가운데에서 가장 큰 계명을 묻게 되고요. 이에 예수님은 깔끔한 답변을 내놓으십니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던 배경은 뭘까요? 독서에 나온 룻은 이방인 여자입니다. 남편도 죽었고, 시어머니인 나오미도 그녀가 안쓰러워 네 고향가서 새로운 삶을 살기 바랍니다. 하지만 그녀는 “어머니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라며 의지를 밝히고요. 결국 마태오 복음 1장 족보에도 실리는 영광을 얻는데요. 여기서 무엇이 그런 결정의 작용을 이뤘을까요? 뭘 봤기에 그랬을까요?
이른바 전문가들은 압축을 잘합니다. 요약을 잘합니다. 군더더기 없는 정리를 할 줄 압니다. 그러나 못하는 사람들은 다 중요하다고 여겨서 삶의 군더더기가 많아지는데요. 이곳에서 교리를 배운 분들은 아십니다. 소위 줏대가 있지요. 치우치지 않고 올곧게 변함이 없으며 하나를 꿰뚫기에 통일성이 있어서 헷갈리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번잡한 이유는 이런 가르침이 투영되지 않아서인데요. 그러니 주님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당신은 일관된 삶을 사시며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