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모두가 아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한국 순교자들의 삶이 어땠는지 아시니까요. 괜한 감동을 드리지도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은 개인적인 체험과 함께 할 때, 그 의미도 사니까요. 와닿지 않는 200년 전 이야기를 강요하고픈 마음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질문은 던져보겠습니다. 2만 명에 가까운 숫자로 순교하신 그분들은 과연 무엇을 봤기에, 무엇을 희망했기에 아까운 자신들의 목숨을 바칠 수 있었을까요?
여기서 이런 것을 봅니다. ‘양보할 수 있는 것과 꼭 지켜야 하는 것의 기준’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무엇을 양보하고 무엇을 지키시렵니까? 쉽지 않지요? 하지만 순교하신 분들은 그걸 아셨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던질 만큼 말이지요. 하지만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거꾸로 하는 걸 봅니다. 지킬 것을 양보하고, 양보할 것을 지키느라 애쓰면서요. 얼마 전, 어떤 분과 면담을 했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자유와 선택을 중시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강요하지 않는 천주교가 호감이 간다는 말을 해옵니다. 저는 들으면서 문득 이런 말이 떠오릅니다. ‘강요를 하지 않으려 한 것이 아니라, 참된 것을 깨우치려 시간을 준 것인데..’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언뜻 강제를 두는 강요를 하지 않으니, 자유롭게 마음대로 하라는 뜻처럼 받아들일 수 있을 지 모릅니다. 허나 괜한 잔소리를 하지 않으니 그 범위 안에서 진리를 제대로 선택해보라는 범주라 알아들었다면, 지금 느끼는 자유로움은 나의 판단력과 분별력을 키우는 시간이어야 할텐데요. 내가 하고 싶은 데로 하는 시간이 아니라 말이지요.
오늘 복음에 나옵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이 말씀이 단순히 몸조심 하라는 뜻이 아님을 아실겁니다.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 내 마음, 기분보다 더 중요한 것, 그게 뭘까요? 자신을 잃거나 해치는 것이란, 이익에 취하는 상태, 욕망을 따라가느라 소진되는 것을 주의하라는 말씀인데요. 우린 이미 본 적이 있습니다. 독재자가 세상을 자기 손에 잔뜩 쥔 것처럼 여겼지만 실제로는 제일 불쌍한 사람이었음을 말입니다. 남들은 다 알았지만 정작 본인만 몰랐던 건데요. 여러분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이 뭔지 알고 계시나요?
순교자들은 양보할 것과 지킬 것을 잘 알고 그것을 우리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우리가 한 건 없었습니다. 그들의 희생으로 그저 편하게 얻은 겁니다. 어찌보면 금수저라 말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속으로 부대낄 수 있습니다. ‘참된 진리를 제대로 보존하면서 갈 수 있을까?’ 에 대한 번민과 고민을 하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그런 고민 속에서 당신과의 신뢰는 싹트고,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해주십니다. 그러니 용기를 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