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7주일

2023. 10. 7. 오후 3:2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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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7주일

 살면서 억울한 일이 발생됩니다. 하느라고 열심했는데 결과가 안좋은 경우입니다. 가끔 이런 일이 생기지요. 나름 의도는 좋았지만 결과는 별로인 때지요무엇을 살폈어야 했을까요? 오늘 1독서의 말씀처럼 포도밭에 땅을 일구고 돌을 골라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지만 들포도가 맺혔습니다. 시비를 가려다오 라며 억울해합니다. 왜 이런 경우가 생겼을까요? 복음도 그렇습니다. 주인이 포도철이 다가와 농사를 짓던 소작인들에게 종을 보내어 소출을 받아오라고 시켰지만 소작인들은 그 종을 죽이고, 주인의 아들까지 없애버립니다. 왜 그들은 주인의 의견을 반대했을까요? 이걸 알아야 여러분의 삶과 연관이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주어진 것을 내 것이라 여겼기 때문인데요. 나는 가진 것을 관리하는 사람이지, 내 맘대로 하는 이들이 아닙니다. 결국 내용의 결말은 어떻게 끝났습니까? 독서의 포도밭은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올라와 엉망이 되었고요. 복음의 포도밭은 다른 소작인들에게 다 빼앗겼습니다. 여기서 우린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예전 일을 상기시켜 드리며 도움을 드려봅니다.

 조선 시대는 과거시험이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조선 시대 이전인 고려 광종 958, 중국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라는 사람의 건의로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과거시험은 중국 수나라 문제 때 590년경에 생긴 것을 도입한 것입니다. 당연히 과거시험에 대해 귀족들은 싫어했습니다. 갖고 있던 기득권을 빼앗기는 것처럼 여겼으니까요. 허나 개인이 사회에 진출할 수 있던 기회가 없던 시절, 귀족들을 견제하고, 출세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었습니다. 이 시험은 임금이나 임금을 대리한 관리의 명령으로 문제가 출제되고요. 자기 주장을 펼치는 방식으로 써내려 갑니다. 그렇기에 문답체의 형식을 갖고 있습니다. 조선 명종 시절 우리 교육이 가야 할 문제점을 진단해보라 는 시험에 1500년 경 사람인 조종도라는 선비가 이런 답변을 내놓습니다. 지금의 교육은 교육법과 교육제도가 확립되지 못한 것이 아니라 학문의 진리가 마음을 즐겁게 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지 않고 단지 과거만으로 선비를 뽑고 녹봉으로만 사람을 부린다면, 어떻게 학교가 정비되고 선비들의 기풍이 바르게 되겠습니까? 예전 송나라 시절에는 열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각 사람이 가진 특징으로 관리를 선발하는 제도가 있었지만 요새는 그렇지 않습니다. 재주와 기량이 적당한지, 인물이 현명한 지 아닌 지 묻지 않습니다. 오히려 수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경쟁시켜, 문맥이 대충 정해진 법식에 맞으면 등용하고는 그를 더 이상 의심하지 않으니 과연 예의를 갖추고 겸손하고 양보하는 도리를 가진 사람이 나오겠습니까?’ 라며 말을 이어갑니다. 요사이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점수대로 맞춰 학교에 들어가고, 점수가 좋으면 성품이 아닌데도 훌륭한 사람처럼 착각하는 시대는 옛날도 있었나 봅니다.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들포도가 맺혔고, 결국 포도밭을 빼앗긴 것에 대해 그 사람은 상황과 남을 탓하며 탄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 것으로 여기며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잘난 맛으로 여기며,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여기서 이루려 하였고, 그에 대한 소득을 당연한 것인양 여겼습니다. 그런 때에 마지막 날이 다가오자 억지스럽게 욕심을 부렸기에, 얻으려다가 다 잃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인헌동 본당 교우 여러분

 우린 마음을 다스리고자 모였습니다. 헌데 마음이 잘 다스려지고 있습니까? 앞서 과거시험의 예처럼, 과열된 경쟁과 등수를 따지는 점수제도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결국 무엇을 보여줬나요? 정작 사람다운 사람, 백성을 사랑하는 관료가 아닌, 자신의 이득을 따지는데 혈안이 되어, 백성들의 혈세를 빨아먹는 세상이 되어간 것은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리 다르지 않는데요. 그 잘난 머리로 무슨 짓을 저질르고 있는 것일까요? 결국 남들은 다 아는데 본인만 모르고 착각하며 살았던 셈이지요. 억울하다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서요. 하지만 진리를 사랑하는 이들은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2독서에 나오지요. 참된 것과 고귀한 것과 의로운 것과 정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은 무엇이든 다 마음에 간직하십시오.” 좋은 것을 만나 잘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흐름은 우리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살고있는 현실이 당연한듯 여길 수 있지만 잘못된 것마저 당연한 듯 여기면  자연스레 영혼은 훼손되고 맙니다. 그러니 모두들 오염되지 않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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