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6주간 금요일
어찌보면 오늘 말씀이 불편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까지 나쁜 일을 하지 않았다’ 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상대의 잘못과 치부를 드러내며 말을 남에게 옮기는 데는 열중하는 것을 보곤 합니다. 여기서 이런 점을봅니다. ‘누군가의 문제점을 봤다면 나에게도 그런 비슷한 점이 있기에 그것을 봤다’ 는 사실입니다. 아예 무관심하거나 문제인식조차 없으면 그런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거울을 보듯 불편하지만 나에게도 그런 명이 있기에 유독 두드러져 보인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는데요. 게다가 죄는 유형과 유행을 타는데요.
살면서 많은 것을 봅니다. 예전에는 학교 선생님에 대해 존중하였지만 요사이는 학교 선생님이 피해자로 전락됩니다. 청문회라는 것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는 당사자의 허물을 들추면 이내 죄송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만, 이젠 검찰이 아무런 잘못을 제시하지 않았기에 잘못이 없다는 염치없음과 뻔뻔함으로 자기 자리를 차지하려 듭니다. 여기에 우리도 예외이진 않습니다. 다만 송곳검증 같은 것이 없기에 그저 이 정도로 사는 것을 다행이라 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검증을 해야 한다면 양심을 가진 내가 더 잘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마음도 한결 가볍지 않겠습니까? 고해소에서 왜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할까요? 본인을 낮추면서 자기를 보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요사이는 무릎을 꿇고 있으면서도 뻣뻣한 이들이 많아집니다. ‘내가 뭘 잘못했냐?’ 는 하소연이 길어지면서요.
빛 아래에 있는 모든 사물은 그림자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밝으신 하느님 앞에 죄 없다고 자신하며 주장할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자신을 살피는 것이 첫 번째 영성입니다. 그것부터 잘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