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8주일.

2023. 10. 14. 오전 9:02:20

글자

연중 28주일. 이사 25,6-10; 필리피 4,12-20; 마태 22,1-14

 가끔 면담 중에 이런 내용을 듣습니다. 우리 애가 어릴 때는 복사도 서고 주일학교도 열심히 나갔는데 20살 넘으면서 교회에 나가질 않아요..’ 한 번쯤 들어보신 내용입니다. 처음에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 문제는 평소에 집에서 잘 가르치셔야지..’ 그냥 퍼뜩 든 생각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해왔던 교육에 문제가 있지는 않았을까?’ 처음 여러분이 교회에 오셨을 때 받은 교리 방법이 있었습니다. ‘교리 문답이란 겁니다. 전통적인 방법이지요. 문답체로 쓰여있습니다. 하느님은 누구이신가?.. 만물의 창조주이신 유일한 신이다 아주 깔끔하잖습니까? 확실해 보입니다. 헌데 이걸 우리가 만든 것은 아니지요. 서양에도 이렇게 교육시켰습니다. 하지만 지나보니 한계가 있었음을 알아차립니다. 이 방법의 문제는 종교를 교과목처럼 이수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그렇지요. 어떤 단계를 통과하면 내가 다 안다고 여기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어떠합니까? 안다고 꼭 실천하진 않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이성적으로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알지만, 불법인거 알면서 하곤 합니다. 왜냐고요? 금기를 넘고 싶은 욕구가 있고요. 앞서 방법처럼 교과 과목처럼 이수하는 방식으로 종교를 접하면, 마치 당연하듯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본당에서 홍보용으로 가톨릭 기본교리 상식을 인쇄물로 만들었지만, 이건 모르는 분들을 위한 초보용이고요. 여러분은 다음 단계로 가셔야지요. 이 길은 끝없는 여정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들으신 복음에서 이런 느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잔칫상을 차렸는데 그걸 왜 안가? 이해가 안되네...’ 부터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내가 바빠서 해야 할 것도 많은데..’ 라는 생각까지 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러 생각을 할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오늘 이 시간 여기 오셨다는 점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가끔 이런 분들을 만납니다. 자기는 교회에 다니지 않지만, 가끔 교회에서 비리나 안 좋은 뉴스를 접할 때 화를 내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에 대해 무관심한 걸까요? 관심이 있다는 걸까요? . 그 화냄은 아주 무관심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게다가 여러분은 그들보다 관심이 많기에 여기 오셨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뭔가 미진합니다. 이제 우린 어떤 차원으로 가야 할까요?

 우린 무신론자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아주 열심하지도 않습니다. 어쩌면 우린 문화적 그리스도인이었는지 모릅니다. 문화적 그리스도인이란 이런 뜻입니다. 내가 사는 세상은 문화적, 정신적으로 세속화된 세상입니다. 여기에 적응하며 살아야 합니다. 비록 세속적인 세상을 살지만, 그리스도교를 거부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세속화된 휴머니즘을 살았던 것입니다. 세속화된 휴머니즘은 이런 뜻입니다. 신앙이 원래의 형태를 잃고, 내가 좋아하는 것만을 뽑아서 알아듣는 경우입니다. 마치 가을에 성지순례를 가면서 성인들이 걸어간 길을 가야하지만, 그 안에는 단풍놀이 같은 야유회가 들어있었고요. 크리스마스는 주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날이지만 그 안에는 연말에 모두가 모여서 1년을 마감하는 연말 행사로 여기는 모습입니다. 본질과는 달라졌지요. 그런 문화에 젖다보면 이것을 왜 해야 하는지,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고 자랐기 때문입니다. 점점 관심이 없어지지요. 그러다가 커서 알게 됩니다. 뭔가 아귀가 안 맞다는 사실을요. 주어진 생명의 시간도 많지 않은데요.

 사랑하는 인헌동 본당 교우 여러분

 예비자 교리를 하다보면 많은 분들이 주님의 기도를 외우기를 어려워합니다. 이건 단순히 나이가 들었기에 외우기 어렵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안에는 아버지라는 단어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살면서 체험했던 아버지가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았습니다. 성장하면서 감정적 상처나 정신적 충격이 그를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요즘은 결손가정도 늘어갑니다. 그러면 하느님이 아버지라는 것. 어머니이신 성모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이끌어주실 수 있음을 생각못하고 추상적이고, 막연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그런 삶을 주위에서 많이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잔칫상에 초대받았지만 그 자리를 거부한 이들은, 어쩌면 참된 아버지를 만나보지 못했기에 그럴 수 있습니다. 이제 그것을 깨달았다면 나의 대에서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해야지요. 체험하지 못한 신앙은 죽은 신앙입니다. 당신의 의도를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